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적자를 뛰어넘은 사생아
필리포 탈리오니의 「라 실피드」
위대한 미완성작
마리우스 프티파의 「백조의 호수」
개천 용의 인정투쟁
로이 풀러의 「뱀춤」
해외시장을 공략한 맞춤 기획 상품
미하일 포킨의 「불새」
망각에서 소환된 자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
무대로 불러들인 학 한 마리
한성준의 「학춤」
내 모든 걸 잃더라도 바꿀 수 있다면
캐서린 던햄의 「사우스랜드」
창조자를 압도해 버린 피조물
앨빈 에일리의 「계시」
거장이 되지 않는 반항아
이본 레이너의 「트리오 에이」
작품이 아닌 작품의 기품
머스 커닝햄의 「이벤트」
최고는 아니되 가장 사랑받은 이
피나 바우슈의 「넬켄」
디엔에이복제로 탄생한 클론
윌리엄 포사이스의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
주(註
흐트러지는 ‘원작’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존재하고 있던 이질적인 춤 작품들을 마치 별자리처럼 한 자리에 놓고 바라보는 이 책은, 그러한 연결 가운데 ‘원작’에 대한 통념을 비튼다. 오랜 시간 동안 예술작품의 시작이자 중심축이 되어 왔던 원작의 권위를 지우는 작업은 그 자체로 새로운 의미를 형성한다. 춤의 형체를 공중에 흐트러뜨리는 과정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파생되는 것이다. 원작은 이제 하나의 모티프, 또는 한 조각 파편으로 남는다.
예를 들어, 시작부터 두 가지 다른 갈래로 이어져 온 낭만발레의 대표작 「라 실피드」(1832는 이후 둘 모두가 지워지는 혁신을 겪기도 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기도 한 「백조의 호수」(1877는 원본이 무엇인지 따지는 일조차 무의미할 만큼 무수히 재해석된다. 이제는 백조 자체가 발레 무용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발레의 대명사가 된 이 명작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음으로써 박제된 채 낡아가기를 거부한다. 오로지 해체를 통해서만 그 근원을 이어갈 수 있다는 역설과도 같이 춤은 ‘끊임없이 사라지는 지점’(p.225에 존재한다.
한편, 근대기 한국에서도 춤 작품의 해체와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학을 모티프로 한 「학춤」이 대표적이다. 전통과 창작 사이에서 교차하며 원작의 개념으로부터 멀어지는 「학춤」은 하나의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통 궁중학무에 뿌리를 둔 이 춤은, 진짜 학을 관찰해 만든 창작무(한성준의 「학춤」, 무용극(조택원의 「학」, 인간과 새의 교감을 통한 현대무용(뤽 페통의 「라이트 버드」, 심지어는 건축물의 일부로까지 이동한다. 2019년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 의해 루이 비통 건물에 그대로 쌓아 올려진 학의 너울거림을 보며, 우리는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의 질감과 부드러운 날갯짓의 어우러짐을 감상할 수 있었다. 과연 어디까지 어떤 형태로 춤이 퍼져갈 수 있는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질 따름이다.
‘춤’이라는 공동의 언어
‘몸의 언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춤은 국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