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강이천 사건 연보
1장 작업 가설-18세기 조선, 불온한 상상력으로 물들다
첫 인상
세 사람, 강이천과 김건순 그리고 정조
또 하나의 의문-천주교와 정감록
연구 성과의 탐색-스즈키의 〈조선 후기? 천주교 사상과 ‘정감록’〉비평
가설: 강이천과 국왕 정조는 “문화투쟁”을 벌였다!
2장 사건 스케치-진사에서 불량선비로
유망선비와 불량선비의 갈림길에서
강이천 사건의 재구성
머릿속을 오가는 몇 가지 의문점
죄인들의 심문 현장으로
《일성록》 읽기-1797년 형조의 심문 기록 속으로
3장 정조의 사건 처리-소품을 박멸하라
문화투쟁이다!
소품과 천주교와 강이천 사건, 그 3자의 관계
소품이 사학으로 가니
정조의 “문체반정”, 어떻게 볼 것인가
천주교를 거론하지 마라
1790년대 조선 천주교회의 교리 지식과 교리서
4장 신유박해의 소용돌이에서
강이천 사건, 재연되다!
《노상추일기》에서 만난 강이천 사건
《추안급국안》에 드러난 강이천의 심문 전략
강이천과 김건순의 서울 회동
사료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미궁에 빠지기 쉬운 역모 사건의 해석
강이천의 죽음, 어떻게 볼 것인가
자료 더 읽기: 주변인들의 최후 진술
5장 천주교와 김건순
김건순은 왜 천주교를 선택했는가
천주교와 지식인
서양 배와 천주교
역사학의 글쓰기
6장 여언餘言: 그들을 위하여
정조의 이념적 경직성, 고도로 계산된 통치 전략
강이천이라는 사람 그리고 그가 꿈꾼 세상
김려, 그와 강이천의 우정에 대하여
김건순을 말한다
소수자의 시선 - 김이백과 이주황과 김신국의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입장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강이천 사건으로 18세기 조선의 열망과 좌절을 되살리다
영정조 시대,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
흔히 영정조 시대를 두고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라 일컫는다. 특히 정조 대는 조선의 마지막 황금?기라 불린다. 정조는 탕평책과 균역법을 통해 정치ㆍ경제적 안정을 꾀했던 영조를 이어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규장각을 세워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적극 등용했다. 영조의 뜻을 받들어 탕평책을 지속적으로 실시, 인물 본위로 관리를 선발하려 애썼다. 이 같은 사회 전반의 개혁 분위기 속에서 《대전통편》, 《무예도보통지》, 《홍재전서》 등 ...
강이천 사건으로 18세기 조선의 열망과 좌절을 되살리다
영정조 시대,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
흔히 영정조 시대를 두고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라 일컫는다. 특히 정조 대는 조선의 마지막 황금기라 불린다. 정조는 탕평책과 균역법을 통해 정치ㆍ경제적 안정을 꾀했던 영조를 이어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규장각을 세워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적극 등용했다. 영조의 뜻을 받들어 탕평책을 지속적으로 실시, 인물 본위로 관리를 선발하려 애썼다. 이 같은 사회 전반의 개혁 분위기 속에서 《대전통편》, 《무예도보통지》, 《홍재전서》 등 편찬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문예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영정조 시대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는 다분히 평면적이다. 그것만으로는 당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자취들, 그들의 망설임과 혼란과 고독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당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다양한 인간군상의 삶을 묻어버린다.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 등을 통해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전략들을 파헤쳐 역사적 인간에 호흡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은 백승종은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에서 18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얼굴을 부조해낸다. 저자는 1791년에 벌어진 한 사건의 관련 기록을 차례로 분석함으로써 강이천으로 대표되는 일군의 지식인들과 국왕 정조 사이에 심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