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제라는 인물, 그리고 일기의 시작
김약제는 고려 말의 절신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17세손이자 직언으로 사림의 존경을 받았던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의 9세손이다. 가까운 직계 선대에서 찰방, 현령, 현감, 참봉 등을 지낸 경우는 있었으나 문신(文臣은 배출하지 못한 집안이었는데, 그런 가운데서 김약제는 1885년(고종 22 식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이듬해인 1886년 정시(庭試 문과에 합격하여 관계에 진출하게 된다. 이후 약 8년간 관계에 몸 담으면서 부교리·교리·장령·수찬·우통례·사성 등의 요직을 수행하며 국왕의 신임을 받았고, 학식과 문장이 뛰어나 경연관으로서 국왕을 보도하는 등 비교적 청화(淸華한 길을 걸었다. 그러나 1892년 우통례 재직 시 산릉(山陵 상제에 대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는 수난을 겪게 되는데, 그의 일기는 이때의 일부터 시작된다.
이 책의 원본인 《김약제 일기》는 모두 4권으로, 1권에는 벼슬길에서의 부침과 유배의 일상이, 2권에는 19세기 실무 관료로서 행한 공무 수행의 궤적이, 3권에는 동학과 개화를 바라보는 보수 관료의 시선과 인식이, 4권에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우려와 무력감이 담겨 있다.
일기 제1권(1892. 4. 7~1892. 10. 30
제1권에서 주목되는 사안은 고금도에서의 유배생활로, 유배지식인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해당 분야 연구를 더욱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의 뭉치가 된다.
일기 제2권(1892. 11. 1~1894. 2. 13
제2권은 서울에서 벼슬에 종사할 때의 기록으로, 국가 및 왕실의 의례, 과거 운용 실태를 비롯하여 중앙 관료들의 상호 교유의 면면들이 매우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기 제3권(1894. 2. 14~1895. 10. 12
김약제의 일기 가운데 사료적 가치가 가장 높은 부분이다. 이때 일기의 핵심 주제는 동학의 향배, 일본의 침략상,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파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