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김구의 숨결, 얼과 혼을 찾아가는 먼 길
서문-당신은 그곳에 가 보았는가?
경교장 반탁의 중심에서 서거의 현장으로
서울운동장 환영의 장소에서 영결의 장소로
창덕궁 군주의 궁궐에서 국민의 회의장으로
돈암장과 이화장 김구와 이승만의 돈독했던 관계와 이별
언더우드 동상 일제와 공산주의가 허물고자 했던 동상
효창공원 삼의사, 임정 요인들과 더불어 영면하다
미군정청 조선총독부에 뒤이은 새로운 권력으로
서대문형무소 옥중에서 뜻을 굳히다
덕수궁 석조전 한국 근현대사의 무대
보신각과 탑골공원 3월 1일의 만세 소리
건국실천원양성소 건국의 인재를 키우라
백범학원과 김구주택 어리오나 저의 4백여 백범이 또 있아오니
염리동 창암학원 마음의 풍금 소리는 가슴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촌동교회 김구의 기부 편지와 이연호 목사와의 아름다운 사연
남산 석호정 일장춘몽처럼 아련한 희귀한 사진
상동교회 상동청년회와 함께하다
남대문교회 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명동성당 마지막까지 이어진 오래된 인연
대각사 용성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다
봉원사와 화계사 김구의 마지막 불교 순례
삼의사 천장식 태고사에서 효창공원에 이르는 길
남양주 홍릉 왕조의 쓸쓸한 낙조
인천감옥 22세에 사형수가 되다
인천감옥 탈옥길 세 상 속으로 숨어들다
인천항 공사장 쇠사슬로 허리를 매고 흙 지게를 등에 지고
인천 내리교회 감격스러운 해방의 장소
강화 김주경 가옥과 합일학교 은인을 찾아서
강화 장곶 버드라지 마을 운동 자금 4천 냥을 받아 몸에 돌려 감고
연보
참고 문헌
색인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 온 것이다. “
- 김구
2019년
백범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3·1운동 100주년 기념
역사·정치 분야 전문가가
김구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역사 여행기
멀고도 험난한 노정이었다. 길도, 안내인도, 등불도 없었다. 백범은 스스로 길을 내고 등불을 밝히며 고단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소원하며 보이지도 않는 저 아득한 곳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조국의 산하와 중국 대륙 곳곳에 피땀으로 얼룩진 얼과 혼을 새겼다. 우리는 그 길을 되밟기로 했다. 발자취를 더듬고 흔적을 헤아리며 백범의 숨결과 체온을 느끼려 했다. “진실은 현장에 있다”는 신념으로 백범이 걸어간 길 위에서 당시의 시대상과 그의 행동, 그리고 사상을 되짚어 보려 했다.
-「발간사」 에서
행동하는 이상주의자, 꿈꾸는 리얼리스트
백정범부의 길에서 삶의 이정표를 만나다
2019년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자 스스로 민족의 문지기가 되고자 했던 김구가 서거한 지 70주기가 되는 해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 없는 백성으로 억압과 설움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에게 김구는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대표로 우뚝 자리매김하고 있다. “18세에 붓을 던진” 이후 시종 유랑생활을 하며 조국과 민족의 독립운동에 헌신해 온 백범 김구. 그래서 김구의 발길은 조국의 산하 구석구석에 이르렀으며 드넓은 중국 대륙을 종횡무진 활보하였다. 1945년 임시정부의 주석이었으나 단지 개인 자격으로 환국한 이후, 미소 냉전으로 재편되는 복잡한 세계 질서와 해방 후의 혼란한 국내 정세 속에서 국토의 분단을 막고자 애썼던 그의 행보는 삼팔선 이남은 물론 이북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