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마운드에 오르며
Strike 1. 선발
내 기억 속 ‘첫 야구’ _30
나만의 투구 폼을 만든다는 것 _34
자기 자신과의 싸움 _39
청룡을 향한 도전 _43
야구로 세상을 배우다 _48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_56
노는 것도 승부다 _64
Strike 2. 중간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_72
어디 불 끌 곳 없습니까? _84
나와 한화 이글스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_95
2000 시드니 올림픽 그리고 한일전 155구 완투승 _117
MLB라는 꿈, NPB라는 현실 _132
돈보다 중요한 야구라는 나눔 _142
투수와 포수, ‘배터리’라는 작은 팀 _153
라이벌이거나 천적이거나 _170
메이저리그 전설의 5할 타자 _180
2006 WBC,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 _192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 그와 나를 연결해준 체인지업 _210
Strike 3. 마무리
더 던지고 싶었기에 찾아간 낯선 땅 호주 _220
차별은 문화가 될 수 없다 _232
질롱 코리아, 지도자 변신에 도전하다 _242
50대 아저씨 구대성의 하루 _255
에필로그 - 마운드를 떠나며 _260
감사의 글 _264
부록
구대성이 말하는 ‘대성불패’ 구대성 _270
구대성이 뽑은 한국야구 드림팀 _286
구대성 연도별 성적 및 통산 기록 _290
바다와 대륙을 건너 야구로 소통했던 글로벌 베이스볼맨!
그의 이름을 그리워하는 것이 비단 한화 팬들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철저한 프로의식과 도전정신은 현 세대의 선수들을 비롯해 수많은 야구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마치 도장을 깨며 더 강한 상대를 찾는 무도인처럼, 밀림을 정복하는 맹수처럼 정상에 오르고 나면 늘 새 무대를 찾아 나섰다. 더 높은 레벨에서, 더 뛰어난 선수들과 겨루면서 자신을 갈고닦으려는 향상심이 가득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방황하는 여정을 거닐지 않았다. 한국의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해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한화 이글스에서 기량을 꽃피웠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전 세계 야구팬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후 일본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해 한 단계 높은 야구를 경험했고, 2005년 한국 나이로 서른일곱이 되던 해에 뉴욕 메츠에 입단하며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거가 됐다.그리고 ‘사상 최초의 야구 월드컵‘ 같은 대회였던 2006 WBC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건재함을 과시했고, 친정팀 한화 이글스와 다시 계약하며 KBO 복귀를 알렸다. 보통 선수들이라면 이미 유니폼을 벗고 인생 후반전을 시작해도 이르지 않을 황혼기였지만,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경험한 선진 야구를 바탕으로 선수로서, 선배로서 한국 야구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이 시기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뛰어든 ’괴물‘ 고졸 신인 류현진 선수에게 체인지업을 전수하는 등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가 훗날 류현진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류현진은 국내외 여러 매체를 통해 선배 구대성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으며, 미국 「LA타임즈」, 캐나다 「더스타」 등이 두 선수의 인연을 크게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구대성은 ‘내가 현진이의 좋은 스승이라기보다, 류현진이라는 훌륭한 선수가 나를 좋은 스승으로 만들어준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구대성은 KBO에 복귀하여 다섯 시즌 동안 활약한 후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