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낯선 한국어로 묻는 안부
안녕하세요? 이 인사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뉴욕 한 대학교의 ‘초급 한국어’ 강의실, 학생들의 질문에 고민하던 ‘문지혁’은 칠판에 이렇게 적는다. Are you in peace? 당신은 평화 속에 있나요? 학생들이 왁자지껄 웃는 와중에도 ‘안녕’이란 두 글자에 대한 질문은 계속 남아 있다. ‘안녕하냐’는 질문에 습관처럼 ‘잘 지낸다’라고 대답할 때, 사실 우리는 스스로의 안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그럼에도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안녕’이야말로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처럼 이방에서, 낯선 언어로 한국어를 다시 보는 일은 새로운 질문거리를 남긴다. 소설 속에서 ‘문지혁’은 낯설어진 한국어 문장들에서 자신의 과거를, 가족을, 꿈을 돌아본다. 작품 전체가 ‘초급 한국어’ 교재처럼 구성된 이 소설은 기초적인 한국어의 문장들에서 ‘나’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름 묻기’를 통해 자신의 이름과 그 이름을 준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시간을 묻고 답하기’ 부분에서는 과거와 현재에 대해 고민한다.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 학생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어떻게 기억될까? 어느새 낯설어진 한국어로 묻는 그 질문들은 한국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를 향한다.
■ 이방에서 ‘나’인 채로 살아남기
『초급 한국어』는 도전하고 실패하는 이야기다. 소설 속 ‘문지혁’은 어떻게든 소설을 써야 한다. 그것은 “가슴이 시키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 창작에 뛰어든 그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너는 소설을 쓰기에는 너무 반듯해.”라는 조언 아닌 조언뿐이다. 뉴욕의 한 대학교에 한국어 강사로 채용된 후에는 모든 게 잘 해결될 것만 같지만, 세계 도시 뉴욕에서 살아남기란 녹록지 않다. 1퍼센트를 위한 경제 시스템을 비판하는 월스트리트의 시위대를 보며, 그 99퍼센트에도 끼지 못한 ‘문지혁’은 생각한다. 나는 뭘까? “제3세계, 파 이스트 아시아에서 온 (구 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