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개정판을 내면서 5
책머리에 8
1. 문제의 제기, 『독립신문』의 일관된 이완용 찬양과 비호를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한의 몇 째 안 가는 재상’ 17
2. 보잘것없는 양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우봉 이씨 시조묘를 찾아 개축한 이완용 25
3. 첫 번째 인생의 전기, 명문대가로의 입양
양부 이호준은 대원군의 친구이자 사돈 31
시문과 서예를 즐긴 전형적 조선 선비의 풍모 38
벼슬길 시작부터 세자를 가르친 온건 개화파 46
4. 두 번째 인생의 전기, 신식 교육과의 만남
이완용은 세계화 논리의 증조 할아버지 57
5. 초대 주미 공사관원으로 워싱턴에 부임하다
청국의 간섭과 험난한 부임 과정 69
서양인 남녀 승객들의 망측한 무도회 80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을 만나다 84
서구 사회를 가장 깊이 있게 관찰한 친미파 원조 89
6. 알렌의 지원으로 30대에 학부대신이 되다
주일 전권공사 부임 거부 99
정동파의 대표로 일본세력 배격에 앞장서다 111
학부대신으로서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다 116
7. 아관파천을 주도하다
대원군의 민비살해와 미국 공사관 피신 127
파천 당일 대신 감투를 세 개나 쓰다 140
8. 외부대신으로서 무더기로 외국에 이권을 넘겨주다
경인철도 부설권 허가와 뇌물수수 혐의 153
9.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이끌다
독립협회 위원장에 선출되다 165
외부대신직을 걸고 러시아의 군사교관 파견을 거부하다 174
만민공동회 개최 다음날 전북 관찰사로 쫓겨가다 182
공금 유용혐의로 전북 관찰사에서 해임당하다 192
10. 매국의 길로 들어서다
8년 만의 학부대신 재입각 197
을사조약에 찬성하다 203
엄귀비 방으로 뛰어든 한규설 212
보호조약의 최고 책임자는 고종이다 222
11. 이토를 대신해
출판사 서평
한때 애국자로 독립협회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이완용, 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제치하 독립협회의 활동과 역할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청일전쟁의 결과, 명목상 조선이 자주독립 국가가 되었으니 이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과거 청나라 사신을 맞던 치욕적인 자리에 독립기념물(그것이 바로 ‘독립문’이며 현판을 쓴 사람 역시 이완용이다을 세우자는 취지에서 서재필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것이 독립협회였다. 그런데 독립협회와 ‘매국노’ 이완용이 깊은 관계가 있었고, 더군다나 그 관계가 돈독한 차원을 넘어 창립총회...
한때 애국자로 독립협회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이완용, 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제치하 독립협회의 활동과 역할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청일전쟁의 결과, 명목상 조선이 자주독립 국가가 되었으니 이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과거 청나라 사신을 맞던 치욕적인 자리에 독립기념물(그것이 바로 ‘독립문’이며 현판을 쓴 사람 역시 이완용이다을 세우자는 취지에서 서재필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것이 독립협회였다. 그런데 독립협회와 ‘매국노’ 이완용이 깊은 관계가 있었고, 더군다나 그 관계가 돈독한 차원을 넘어 창립총회 당일 최대의 후원기금을 낸 사람이 이완용이고 기관지인 『독립신문』에서 그에 관한 기사가 우호적인 차원을 넘어 때때로 비호와 찬양까지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저자 역시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들에 맞닥뜨려서는 당황했다고 서문에서 밝히면서, 글의 실마리를 독립협회와 이완용의 관계로부터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민족 반역자의 매국적 삶을 역사에 고발함으로써 후세에 교훈으로 삼겠다는 당초의 집필 의도는 완전히 빗나간 것 같았고”, “고발은커녕 그의 알려지지 않은 애국활동을 들춰냄으로써 매국행위를 희석시킨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부분은 그런 점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학부대신으로서 이 땅에 의무교육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