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자들에게 알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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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종 논객 19
1. 신문 기자 23
2. 기자 겸 정치인 75
3. 팸플릿 작가 94
4. 공염불하는 자 100
5. 직에 연연하는 자 109
6. 하나만 우려먹는 자 112
7. 번역 기자 116
8. 신념 작가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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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종 비평가 129
1. 구식 비평가 135
2. 금발의 젊은 비평가 145
3. 대비평가 157
4. 문예 비평가 177
5. 군서 신문 비평가 200
결론 260
작품해설 발자크, 언론의 생리를 직격하다 271
저널리즘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그 속의 본질을 적확하게 꿰뚫다
발자크가 살던 집의 출입문은 두 개였다. 평생 빚더미에 허덕여야 했던 그는 날마다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피해 뒷문으로 도망쳐야만 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펜으로 정복하겠다”라고 자신을 다잡을 만큼 습작에 열성을 보였던 그는, 첫 작품 『크롬웰』의 실패 이후 소설보다는 저널리즘이 돈이 된다고 판단해 문학판을 떠난다. 이후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는 저널리즘에 매료된다. 인간의 삶과 생존 방식에 대해 치밀하게 파고드는 그가 언론의 생리에 둔감할 리 없었다. 한때 “저널리즘이야말로 인간 지성의 총체”라 칭송할 정도로 발자크는 언론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권력이야말로 내리막길로 치달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카드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발자크와 저널리즘의 관계가 뒤틀린 건 비단 『키뇰라의 재력』 초연 당시 파리 신문과 잡지가 쏟아낸 혹평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자신이 창간한 《르뷔 파리지엔》이 3회 만에 파산한 게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편집, 인쇄, 조판까지 언론이 탄생하는 전 과정에 참여했음에도 별다른 성과 없이 실패하자 그는 자신이 저널리즘 세계로부터 패배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때 시작된 저널리즘에 관한 분노와 원망은 『기자 생리학』의 집필로 이어진다. 그는 “다른 이들은 글을 너무 많이 써서 논객인데, 이 자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논객”이라고 신문사 주필을 꼬집고, 똑같은 되풀이하는 언론을 향해 “지금 파리 사설에는 상투적인 연설 투 같은 관습에 찌든 미사여구만 있을 뿐”이라며 날카로운 문장을 내리꽂는다. 자신을 공격한 비평가에 대한 증오가 저널리즘의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발자크가 묘사하는 언론의 생리는 통쾌하면서도 우울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가 문단과 언론을 향해 휘갈긴 복수의 펜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기자 생리학』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은 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