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 “합천으로 가야 해!”
히로시마가 고향인 아이, 곡지
무서운 예방주사
반짝반짝 빛나던 야학 시절
핵의 아이,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다
새로운 길로 첫발을 내딛다
처음 터져 나온 그날의 목소리
원폭 2세 환우회 첫 모임을 갖다
아버지 등의 무거운 가방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싸움
붉게 타오른 마지막 불꽃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작가의 말
김형률, 그 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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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률 생애와 연보
전태일의 또 다른 이름,
원폭 2세 환우의 인권과 핵 없는 세상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 간 반핵인권운동가 김형률
김형률은 전태일이 노동자의 권리, 인간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불꽃처럼 살다 분신했던 1970년에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원자폭탄 피해자입니다. 한날 태어난 쌍둥이 동생은 태어난 지 1년 6개월 만에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김형률은 어릴 때부터 유달리 몸이 약하고, 병치레가 많았습니다.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김형률은 자신의 병이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김형률은 자신의 병의 원인을 찾다,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 원폭 피해로 유전적으로 체내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면역글로불린이 결핍되어 생긴 것으로 면역력이 약해 세균에 쉽게 노출이 되다보니 기관지 폐색이나 폐렴에 쉽게 걸리고 심하면 각혈로 목숨까지도 위험하게 되는 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김형률은 보통사람보다 폐의 기능이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김형률은 병의 원인을 찾다, 자신의 병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폭 피해자이자 핵의 아이로 태어났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바로 살아있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김형률은 병의 원인이 된 원폭 피해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1세와 2세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어 자신이 ‘원폭피해2세’라는 것을 스스로 세상에 밝히고,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2세들에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권과 생명권이 있다는 걸 우리 사회에 외칩니다. 김형률은 원폭피해2세 환우들의 인권회복과 생존권보장을 위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여러 시민단체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김형률은 태어난 지 12,725일 되는 2005년 5월 29일 새벽에 35살에 불꽃같은 삶을 마칩니다.
김형률이 못 다 이룬 꿈은 아버지와 김형률의 뜻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