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면?
누구나 마음속에 버킷 리스트를 품고 있을 테지만 지금 당장 실천하는 일은 언제나 요원하기만 하다. 다비드 칼리는 은퇴한 남자의 목소리를 빌려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늘어놓는다. 버킷 리스트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여행, 새해 다짐으로 늘 계획하는 외국어 공부, 악기 배우기, 요리 배우기, 그리고 낭만적인 밤낚시, 종일 풀밭에 누워 하늘 보기, 숨이 찰 때까지 달리기, 강에 뛰어들기, 사랑한다고 외치기… 머리칼은 듬성하고 주름은 자글자글한 남자가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을 이제 반려자와 함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짠한지. 그런데 여자는 어째 시큰둥하다. “뭐하러?” “대체 왜?” “지금은 말고.”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귀찮아하는 여자의 말과 행동에 점점 시무룩해지는 남자.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피력한다.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나랑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지 않아?” 그의 간절한 요청은 “내 인생은 이미 여기 있”다는 여자를 움직일 수 있을까? 쌓인 설거지, 어질러진 집 안, 나만 바라보는 개, 인생이 여기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 있을까?
다비드 칼리의 글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온다면, 세실리아 페리의 그림은 글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즐거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생이라는 여정을 마칠 때까지 우리가 작은 모험들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의 경쾌하고도 따듯한 그림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수록 충만해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두 작가가 빚어낸 뭉클한 여운이,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유예하며 지금을 임시방편으로 살아온 모든 이들을 포옹해 온다. 인생은 지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