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성과 광기, 이 둘은 가까이 있습니다”
10년을 춤추고 30년을 암흑 속에서 산 비운의 천재 예술가
폴란드인 무용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니진스키는 아홉 살 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 발레 학교에 합격하면서부터 발레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1909년 19세의 나이에 최고의 공연 기획자 세르게이 댜길레프를 만나면서 그의 천재성은 날개를 달고 더 높이 날아올랐다. 니진스키는 댜길레프가 창단한 발레 뤼스의 최고 무용수로서 서방 세계에 진출했고, 파리에서 선보인 첫 공연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널리 명성을 떨쳤다. 동성 연인 관계이기도 했던 니진스키와 댜길레프는 함께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키며 20세기 러시아 발레의 황금기를 이끈 ‘환상의 듀오’였다.
그러나 만범순풍을 타는 듯했던 니진스키의 인생은 결혼을 기점으로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니진스키가 헝가리 귀족이자 여성 무용수인 로몰라 드 풀츠키와 결혼을 단행하자, 이에 분노한 댜길레프가 니진스키를 발레단에서 해고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이후 니진스키는 스스로 발레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급기야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쟁 포로로 헝가리에 억류되기까지 했다. 결국 연이은 예술적?육체적?재정적 불안 속에서 그는 1919년 29세의 나이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말았다.
그토록 높이 도약했던 니진스키는 그만큼 극적으로 추락했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짐에 따라 예술가로서의 생명도 끝이 났다. 이후 인생의 절반인 30년 동안 그는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며 광인이라는 족쇄에 갇혀 살았다. 1950년에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그의 마지막 나날들은 발레 예술의 새 지평을 연 그의 업적과 대비되며 삶과 예술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급격한 낙차의 비극적인 삶 또한 그를 전설적인 인물로 만든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극적이면서 영광스러운 삶에 대한 이성적이면서 통찰력 있는 설명”
방대한 기록과 증언을 치밀하게 집약한, 니진스키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