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모든 종교는 고유의 상징을 갖고 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은 단연코 십자가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상징은 기독교의 고유성, 특이성, 절대성을 함축하는 대표적 상징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통해 실현된 세계 구원의 의미를 함축할 뿐 아니라 십자가의 은택을 입은 사람들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희생과 섬김의 삶을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십자가는 교리(구원와 윤리(삶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영어권에서 전설 같은 설교자인 플레밍 러틀리지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담긴 모든 신학적 이슈를 현대문화와의 연관성 속에서 다루는 책이 말이다. 성공회 사제인 저자는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쓰기 위해 무려 20년의 세월을 바쳤다. 가히 필생의 역작이라 할 만하다. 본서는 분량과 내용 모든 면에서 아마도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더불어 20-21세기에 탄생한 십자가에 관한 가장 뛰어난 고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플레밍 러틀리지는 먼저 오늘날 현대 사회와 교회 안에 만연한 반 십자가 현상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것은 십자가가 종교적 부적이나 장식으로 오용되는 현실과 더불어, 초월자로부터 오는 은총 대신에 자기 노력과 행위로 절대적 경지에 도달하려는 현대의 영지주의적 현상들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폭력과 학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유형의 시도들도 포함된다. 저자는 이런 왜곡을 바로잡고, 오해를 교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는 다양한 십자가 해석 중에서 특히 “승리자 그리스도 모델”에 강조점을 두면서도 여러 십자가 해석들이 경쟁하거나 서로를 배척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히면서, 전통적인 “형벌 대속론”과 “재연(총괄갱신론”을 포괄하는 심층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또한 출애굽 모티프에 담긴 구속과 해방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실현된 새창조의 은유 안에 담긴 풍성한 구원 교리를 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