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우지 못했던 삶,
나비가 되어 다시 꽃에게로
시간을 되돌려, 그 악몽 같던 일을 겪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 만약 그 기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춘희가 순이와 함께 삼거리 양장점 앞에서 ‘모던 걸’을 꿈꾸며 돈 많이 벌어 오자며 떠난 그 곳은 구두 공장이 아니었습니다. 기차로 몇 날을 달려 도착한 중국 땅에서 함께 갔던 조선의 소녀들 모두는 일본군 위안부로 삶을 짓밟힙니다.
당시엔 취업 사기, 공권력을 동원한 협박, 유괴 등의 방법으로 수많은 조선의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곳에서 미치고, 어떤 이는 병에 걸려 죽고, 또 어떤 이는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겨우 목숨을 건져 돌아왔지만, 춘희는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요. 식민치하에 가족마저 모두 잃고 혼자가 된 춘희는 고향을 떠나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고자 했지만, 눈감는 날까지 그 상처를 잊지도, 치유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시점을 번갈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비가 되어 담담히 자신의 삶을 돌이켜 이야기해 주는 춘희의 시점, 그리고 춘희의 증손녀 열여덟 살 희주를 보여 주는 시점. 춘희의 지난 삶과, 춘희가 잃어버린 그 시절을 살고 있는 희주의 모습은 번갈아 대비를 이루어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삶 같으면서 한편으론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줍니다. 또 두 세대를 건너뛰어 둘의 연결고리가 약한 것 같으면서도, 춘희의 존재는 희주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되어 주었지요.
춘희는 그런 희주를 보며 ‘꽃’이라 말합니다.
나는 피우지 못했던, 그래서 길에 핀 꽃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춘희는 이제 나비가 되어 다시 꽃에게로 갑니다.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이 시대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가해자가 더 떳떳하고 피해자를 숨죽이게 만드는 모순의 지속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