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상세보기

도서명 이윤기 : 1972-2020 - 헥사곤 한국작고작가선 1
저자 이윤기
출판사 헥사곤
출판일 2021-03-20
정가 28,000원
ISBN 9791189688554
수량
이윤기는 자신의 생활을 그리기라는 미술 형식을 차용해 미학화한다. 그에게 미술은 일기의 한 형식이자 영적 담화를 응집하는 묘판이다. 그래서 그의 미술은 농사 월령의 시간처럼 사계의 순간들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좀 더 더하고, 빼고 하는 것 없이 묵묵히 제 시간을 쌓아가고 있단 얘기다. 작업실에 흐드러진 얼굴 꽃을 보는 일은 풍작의 들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형식이 완결성 없이 부유할 수 있다는 점도 발견한다. 인물의 세부 묘사가 거칠고, 화면의 여백이 뚜렷한 의지를 갖지 않아 정신의 근거를 약화시키는 면이 없지 않고, 오브제가 지닌 본래적 성질과 상징을 인물과 결합하는 것도 덜 섬세하다. 전통 인물화가 세필을 이용해 품격의 방향을 잡아낸 뒤 일종의 ‘품평회’를 거쳐야 본 작업에 시작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상이 되는 인물과 한 달여를 동거하며 전체로서의 상을 되새김했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리얼리티는 ‘닮음’의 오차가 아닌 ‘닮음’의 영성에서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윤기의 시작은 들국화처럼 꼿꼿하다. 그의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가능성의 파동 안쪽에 있게 한다. 그리기에 대한 집요한 시선, 색의 차이와 언어를 달굼질해 나가는 행보는 그에 대한 희망이다. 생활미술의 힘은 ‘생활’에서 온다. 일상이라거나 날들이라거나 하는 반복적인 ‘날(日’의 연속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생활미술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기억이며, 현실이며, 시대다. 생활미술은 현실 언어에서 지독한 현실이 발생한다. 이윤기의 희망은 그 지독함이 이제 막 꽃망울을 가졌단 사실에서 시작된다.
● 김종길 | 미술평론가

-본문 중에서-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목리는 실개천 하나를 둔 작은 마을이었다. 예부터 씨족을 형성했던 집성촌도 아니고 너른 들녘을 품었던 양지골도 아니다. 그곳 사람들은 수원에서, 병점에서, 그 위 용인에서 밀려왔거나 더 먼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