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숫자의 홍수 속에 살면서 맹목적으로 숫자를 숭배하고 있지는 않는가?
숫자의 유용성을 활용하면서도 그것이 동반하는 ‘얇은 사회’의 약점을 넘어서야 한다
어원학적으로 ‘통계(statistics’가 ‘국가의 과학(science of the state’을 가리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숫자는 근대국가의 전개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다. 세계 전체에서 그리고 개별 국가들에서 인구, 국민총생산, 실업률 등의 숫자는 사람들의 사회적 삶을 집약해 표현할 뿐 아니라 온갖 의사결정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이런 추세에서 예외가 아닐뿐더러, 숫자의 사용에 맹목적인 ‘수량 열광(quantifrenia’을 보이고 있다. 간단한 사례로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모든 학생을 국가가 시행하는 단일의 시험에서 그가 획득한 ‘숫자’에 따라 등급 매기는 일을 50년 넘게 지속하면서도, 그것을 교사의 판단이나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숫자 사용의 확대와 심화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 일반에서 진행된 변동이었지만, 이 책이 보여주듯 그 과정이 사회의 마찰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숫자의 사용은 대체로 권력자들의 재량을 숫자 생산의 엄격한 규칙으로 제한함으로써 결정에서 자의성을 제한하려는 싸움 속에서 증가했다. 다양한 권력과 이해관심을 가진 사회세력들이 참여하고 논쟁하면서 숫자 생산의 규칙을 제정하고 그 규칙을 실행하는 제도들을 설치했다. 그러한 개방성이 숫자 생산의 규칙과 그 규칙에 의해 생산된 숫자의 중립성과 ‘기계적 객관성’을 보증하고 보호했으며, 그러므로 숫자는 일정 정도 민주적이고 합의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식민지 통치에서는 숫자 사용의 확대를 가져온 사회적 요구들을 제국주의의 물리적 폭력으로 질식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숫자 사용에 필요한 사회적 준비와 조정 없이 따라서 관련된 제도적 장치와 인식의 형성을 결여한 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실행되었다. 특히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숫자 사용이 생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