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들어가며: <버닝>과 <기생충>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1부 그 여자는 어디에 있는가
물리적 부재와 상징적 소멸
<살인의 추억>,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박하사탕>, <뮌헨>의 ‘성녀와 창녀’
<박하사탕>과 <봄날은 간다> 다시 쓰기
총을 든 여자들
〈윈드리버〉,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공동경비구역 JSA〉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낯선 얼굴
〈한공주〉, 〈여자, 정혜〉
소녀들의 죽음
〈동전 모으는 소년〉, 〈마더〉, 〈죄 많은 소녀〉
<아이 엠 러브>, 그 여자의 집은 어디인가
2부 모성 탐구 생활
어디에나 있-다-는 모성
<가족의 탄생>, 여자들만의 집
“엄마 나빠!”, <4등>과 가해자-모성
혁신, 혹은 고색창연함 242
〈서치〉, 〈그래비티〉
3부 오빠들의 여성/영화
<더 포스트>와 ‘가부장제의 유령’
<로마>의 자매애, 무모순적인 판타지?
그 풍경이 나를 울리네, <위로공단>
<스토커>는 왜 <인디아>가 아닌가?
아버지의 ‘귀가’, <바닷마을 다이어리>
에필로그: ‘여성 서사라는 현실’
찾아보기
여성 배제의 영화적 관습 중에 특별히 오랜 연원을 자랑하는 것은 ‘성녀 대 창녀’, ‘좋은 모성 대 나쁜 모성’이라는 이분법이다. 저자가 보기에, 실재하는 여성들의 삶의 다채로운 양태와 차이에 유의하지 않은 채 남성의 기준에 따라 손쉽게 여성의 삶을 도식화하며 저 이항대립의 뒷항에 속한다고 분류된 여성들에게 영화 속에서 (부당한 응징을 가하는 전통은 오늘에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예컨대 이창동의 <박하사탕>에서 여성 주인공 순임(문소리은 ‘순수함’의 화신, 즉 성녀에 가깝게 그려진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구체적인 삶의 결과 실감을 상실한 납작한 인물로 나타나는 영화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에 등장하는 여자 킬러는 ‘좋은 엄마’이자 신실한 아내의 남편을 유혹했다는 이유로 플롯의 큰 줄기와 무관하게, 다시 말해 뜬금없이, 나체를 드러낸 채 총에 맞아 죽는 응징을 당한다. 정지우의 <4등>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수영 특기생으로 만들기 위해 아들이 코치에게 매를 맞는 것마저 감수하는 엄마는 정작 폭력의 가해자인 코치보다 더 나쁜 존재로 부각되며 그로 인해 관객의 비난을 한몸에 받기에 이른다.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혁신적인 영화 기법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미국 영화 <서치>의 경우 ‘나쁜 모성’이라는 간편하고도 진부한 기준을 서사적 반전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제풀에 구태의연한 상상력의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다고 저자는 본다.
영화가 여성 인물을 다루는 데에서 또 하나의 뿌리 깊은 관행은 여성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 사회적 악의 순전한 피해자이자 희생양으로(만 묘사하는 것이다. 테일러 셰리든의 <윈드리버>, 드니 빌뇌브가 만든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처럼, 여성은 제아무리 FBI 요원일지라도 서툴고 미숙한 탓에 남성들의 혹독한 지도 편달을 거쳐야 비로소 제 몫을 감당하는, 수동적이고 어딘가 모자란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여성을 무력한 존재로 재현하는 이러한 영화적 관습은 성폭행 피해자를 초점에 둔 영화들에서 특히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