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적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0년 전, 바다와 대륙을 뛰어넘어 함께 싸운
과격한 여자들의 분투와 산화
이 책은 본문을 몇 개의 부나 장으로 나누고, 각각에 소제목을 붙이는 일반적인 단행본과는 다른 구성을 취한다. 가네코 후미코, 에밀리 데이비슨, 마거릿 스키니더 세 인물의 이야기가 교대로 등장하되, 앞사람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 사람 이야기의 첫 문장이 넘겨받아 마치 끝말잇기를 하듯 전개된다. 예를 들면 “눈동자 깊은 곳에 검은 불꽃을 품은 아이는 뚜벅뚜벅 땅바닥을 밟으며 썩은 여자들이 사는 지옥의 집으로 돌아갔다”라는 문장으로 끝난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지옥이란, 틀림없이 바로 여기다”라며 에밀리 데이비슨의 이야기가 넘겨받는 식이다.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한 번도 겹친 적 없는 세 여성의 삶을 부단히 이어 붙이며, 이들이 결국 같은 얼굴의 적을 향해 싸웠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 적이란 바로 국가, 민족, 전통, 신분, 도덕, 제도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지배 권력이다. 또한 고귀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공고한 사회 구조다. 기존의 권력과 사회 구조에서 이들은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이었다. 무호적자였던 후미코는 학대에 가까운 유년을 보낸 뒤 정해진 거처 없이 사회 밑바닥을 떠돌았고, 유복한 사업가와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에밀리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권리를 얻지 못했으며, 스코틀랜드에서 아일랜드인 부부의 딸로 태어난 마거릿은 영국 통치하에서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를 위해 총을 들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이들로서는 어차피 경계 바깥에 있고, 자격 없는 인생이라면 장렬히 싸우다 부서진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무자격자’를 얕보지 마라. 나의 출생은 데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탈진실post-truth이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사실fact 이전에 존재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를 그 누구도 지배할 수 없으리라. - 15쪽
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