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을 바꾸다
페미니즘이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는 단지 과거에 대한 기억일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와 관련을 맺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설명은 역사 그 자체를 형성하고 구조화한다. ‘물결’ 은유가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자신의 역사를 ‘물결 서사’로 기록하고 설명해 왔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제1물결, ‘여성성의 신화’를 깨고자 했던 제2물결, 페미니즘의 시간성을 퀴어링하고자 했던 제3물결, 그리고 오늘 세계의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행동주의의 파고를 이어가는 제4물결까지. 그러나 선형적 시간성에 기대거나 연대기적 서술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지금까지의 물결 서사는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확산되고 즉각적으로 행동주의로 이어지는 제4물결에 이르러 결정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세대와 확고한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전 물결과의 차이와 단절을 강조하고, 페미니즘 명사들로 대표되던 그간의 서사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못했던 모순들이 동시적으로 문제시되고 일상의 차별과 폭력을 참지 못하게 된 여성들이 불시의 사건을 계기로 연결되고 익명의 대중운동으로 폭발하는 현실의 역동성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성이 물결을 추동하며,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여겨진 과거의 물결들이 동시대의 물결과 더불어 급등하는 현실은 페미니즘이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에 전면 전환을 요구한다.
프루던스 체임벌린의 책 『페미니즘 제4물결: 정동적 시간성』 은 이러한 동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자, 페미니즘의 시간성에 대한 인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저자는 ‘물결 서사’를 이제는 던져버려야 할 유물로 기각하지 않고, ‘정동적 시간성’이라는 접근법을 지렛대로 인식의 새로운 생산적 가능성을 탐문한다. 실상 물결 은유는 무심히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단절이나 분리와는 거리가 있으며, 확실성의 기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역류와 회오리를 포함한 잠재적 복잡성을 내포한다. 물결은 넓은 바다의 일부이며, 시간의 순서대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