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책을 펴내며 5
제1부 세상에 남아를 낸 것이 어찌 우연이리오(1544~1581년
1. 출생과 세계(世系 14
2. 중봉의 어린 시절 17
3. 왕후의 명을 거절하다 24
가. 학문에 목마른 젊은 선비 24
나. 중봉의 스승들 27
다. 논향축소(論香祝疏 31
4. 명나라 사행(使行과 동환봉사(東還封事 39
가. 『조천일기(朝天日記』 39
나. ‘질정관회환 후 선상팔조소(質正官回還後先上八條疏’ 52
다. ‘의상십육조소(擬上十六條疏’ 71
5. 통진현감(通津縣監 부임과 시련 97
가. 주자대전(朱子大全의 교정 97
나. 통진현감 부임과 유배 100
다. 부친과 스승 토정(土亭의 묘소를 찾다 103
6. 도사 중봉(重峯과 관찰사 정철(鄭澈 110
제2부 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입니다(1582~1590년
1. 충청도와의 인연 118
가. 외직을 자청하다 118
나. 벼슬을 버리고 옥천 산골에 은거 128
다. ‘율원구곡가(栗原九曲歌’ 134
2. 이발(李潑과의 절교 141
3. 공주 제독관에 제수 147
가. 변사무겸논학정소(辨師誣兼論學政疏 148
나. ‘만언소(萬言疏’와 제독관의 사임 155
4. 왜국의 사신을 배척하소서 160
5. 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입니다 172
가. 고향으로 향하는 발길 172
나. 도끼를 놓고 올린 ‘논시폐소(論時弊疏’ 178
6. 함경도 길주 영동역에 정배하라 193
가. 고난의 2천 리 귀양길 193
나. 귀양지에서 쓴 상소 204
다. 정여립 모반 사건과 중봉의 방면 214
라. 이발(李潑에 대한 변함없는 우정 220
7. 영남 지방을 주유하다 224
제3부 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1591~1592년
1. 전하, 왜국 사신의 목을 베소서! 246
가. ‘청참왜사소(請斬倭使疏’ 248
나. 영호남 비왜지책(嶺湖南備倭之策 264
2. 왜란이 임박했다 280
3. 왜적의 조선 침공 29
『지당에 비 뿌리고』는 중봉(重峯 조헌(趙憲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파란만장한 49년 삶을 엮은 책이다. 중봉 조헌(趙憲, 1544~1592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관직을 떠나 초야에 묻혀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금산전투에서 순절했다. 민족의 사표요, 절의(節義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선생은 동국 18현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선생은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초탈(超脫한 분이었다. 그의 식견과 학문은 공명정대하고 수기(修己에 엄격했으며, 불의를 비판하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따르는 온갖 저항과 난관에도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았다.
임진왜란을 맞아 선생이 기병(起兵하자 1,600여 명의 의사들이 각지에서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의병(義兵들은 임진란 최초로 공성작전(攻城作戰을 감행하여 청주성을 탈환했다. 그러자 이를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는 극심했고,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의병 700여 명만이 선생을 따랐다. 정규 군인도 아닌 의병들은 금산 연곤평에서 일만 오천의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한날 한자리에서 모두 순절했으니, 이는 동서고금의 전사(戰史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의병들! 선생을 따라 고귀한 목숨을 나라에 바친 그 희생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 책을 펴내며, 5~6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