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권종호 오수교회 원로목사
추천사 공미연 금빛교회 권사
책을 펴내며
들어가기 전에
한민족을 품에 안은 큰 어른 ─ 한경직 목사
제1장 한경직 목사는 누구인가
제2장 한경직 목사의 목회
제3장 영락교회가 설립한 기관들
제4장 은퇴 후의 사명
세계 제1의 교회로 성장, 발전시키다 ─ 조용기 목사
제1장 조용기가 태어나다
제2장 조용기 목사의 목회
한국의 요한 웨슬리 ─ 김선도 목사
제1장 한국의 요한 웨슬리가 태어나다
제2장 광림 교회 목회─교회성장학의 대부
제3장 김선도 목사가 하나님의 큰 종으로 길러진 과정
제자훈련으로 한국의 교회를 깨우다 ─ 옥한흠 목사
제1장 옥한흠 목사는 누구인가
제2장 제자훈련
제3장 한국 교회 갱신의 주역이 되다
기독교 문화를 대중문화 가운데로, 사도행전적 교회를 지향하다 ─ 하용조 목사
제1장 하용조 목사는 누구인가
제2장 하용조 목사와 목회
젊은 청춘들과 함께하다 ─ 김준곤 목사
제1장 김준곤 목사는 누구인가
제2장 CCC의 대부가 되다
새벽기도로 한국 교회를 깨우다 ─ 김삼환 목사
제1장 김삼환 목사는 누구인가
제2장 김삼환 목사의 목회의 강조점
극동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다 ─ 김장환 목사
제1장 김장환 목사는 누구인가
제2장 복음전도자Evangrlist로서의 삶
제3장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경영자Economist로서의 삶
제4장 활력을 주는 섬김자Energizer로서의 삶
이웃 사랑에 뜨거운 가슴을 가진 청년 ─ 김진홍 목사
제1장 김진홍이 하나님의 종이 되기까지
제2장 활빈교회를 창립하기까지
제3장 두레공동체의 정신과 비전
말씀을 만나게 하는 큐티의 여왕 ─ 김양재 목사
제1장 김양재 목사는 누구인가
제2장 김양재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기까지
제3장 쓰임받기 시작, 큐티 선교회의 시작
제4장 우리들교회 창립
책 속으로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된 보린원과 더불어 영락교회는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주일예배를 2부로 드리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는 우리나라 교회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급격하게 증가해 그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주일예배를 2부로 나누어 드리게 된 것이다. 한 목사는 교회를 신축해야겠다고 의논하고 그 일을 진행하게 된다. 당시 피난민들로 구성된 성도들이기에 헌금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한 목사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 건축 보조금을 청원하여 2만 달러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노력으로 마침내 교회 기공예배를 1949년 3월 24일에 드리게 되었으며, 1950년 5월 교회당 350.5평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이때의 영락교회 성도들 4천여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33쪽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워지고 마침내 1973년 8월 19일 주일에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9월 18일부터 23일까지는 ‘제10차 세계오순절대회’가 여의도 성전과 효창운동장에서 외국 성도 5천 명을 포함하여 5만 성도가 모인 가운데 개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4일 주일에는 여의도 성전 헌당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때의 성도의 숫자는 1만 2천5백여 명에 이른 것이다. 실로 괄목할 정도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1961년 10월에 서대문에서 개척한 교회가 1973년 9월에 1만 2천5백여 명의 성도로 부흥이 된 것이다. 12년여 만에 이렇게 큰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55쪽
김선도는 6·25 한국전쟁 중 평양 비행장에서 유엔군 낙하산 부대가 내려오던 날, 북한군 연락병과 같이 남으로 도망치다가, 생사의 기로에서 소나무를 끌어안고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저를 살려 주시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되겠습니다.” 그는 새벽까지 그리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고 한다. 그는 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