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고르고 판판한 세상을 위해 수세미를 들다
‘남자가 부엌에 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말이 낯설게 여겨질 때는 언제쯤일까요? 2021년이 되었어도 왜 이 말은 아직까지 종종 들려오는 걸까요?
몸 밖으로 불거진 생식기가 없다는 ‘죄’로, 부엌과 빨래터로 내몰리고 기어가며 방바닥을 닦아왔던 수많은 여자들은 이제야 허리를 펴고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고, 단순히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직장이 있든 없든 가사노동의 무거운 짐을 혼자만 짊어지는 건 불평등하고 잘못된 일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사실을 당연히 여기고 있거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도 모른 척 뒷짐 지고 있습니다. 이은용 기자는 자신 또한 남자라는 이유로 눈 감고 편히 지내던 시절이 있었음을 죄스럽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짝을 대신해 싱크대 앞에 선 순간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설거지는 ‘사람에게 고르고 치우침 없어 한결같은 세상을 향해 한국 남자가 집에서 스스로 내디뎌야 할 첫걸음’입니다.
2020년 구월 2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이은용 기자가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 중에서 여성의 집안일 하루 평균 시간은 3시간 7분, 그러나 남성은 1시간도 되지 않는 54분을 기록했습니다. 남성은 한번도 집안일을 ‘자신의 일’이라 여겨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말입니다.
이은용 기자는 이 책을 집어든 남자들에게 직접 설거지를 시작할 것을 권유하며, 자신이 설거지를 하고 밥풀을 긁어내며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갓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하며 느꼈던 허리의 통증을. 자신이 하루 동안 해왔던 설거지의 시간을. 밥을 먹은 뒤 자연스럽게 수세미를 잡으며 시작되는 설거지의 그 과정들을. 자신이 모르는 새 남겨놓았던 하얀 세제 자국과 그것을 지우기 위해서 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