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용사 연금인상 요구
소파상 시상식
석기시대 부락 터전 발견
전국 천연두 예방접종
인권옹호주간
모국 땅 밟은 재일교포
문경 세멘트공장 증축
국토개발 일꾼 강습
음력설 풍경
노조원 교육
쥐를 없애자
한미행정협정 예비회담
충주비료공장
귀환어부들 북한실정 폭로
지역 사회 개발 국제회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송충이 잡이
최고의장 및 내각수반 갱질
김포공항 이양식
쌍십절
한미 합동 교통정리대회
서울시민회관 개관
한미유대강화국민대회
박 장군의 방미와 귀국
재일한국실업가들 내한
신라유물 발견
울산공업지구 기공식
소아마비 예방약
북한 괴뢰군 하사 홍성찬 군의 귀순
여러 문화제들
중소기업합리화 시범공장
새로운 화폐에 따른 화폐교환
미국 군인들에 대한 청와대에서 열린 환영파티
한미 차관협정
비무장지대에서 공산군이 미군병사 살해
콜레라 발생
1963년 대통령 선거
석굴암 보수
무제한 송전
고아의 은인 “홀트”씨 서거
제1회 상공인의 날
서울에 계엄령 선포
장도에 오른 참치어선
어부들 북한에서 도라오다
결핵은 당신을 노리고 있다(결핵 예방주간
‘케어’ 총재 내한
유엔 총회 개막
무형문화재
한일협상 타결
로스토우 씨 내한
어린이 날
박 대통령 미국 방문
한미 용역 계약 체결
강재구 소령 장례식
수출되는 가발
순종황후 별세
아시아 태평양 지역 각료회의
부산 조선업 시설확장 및 기공식
자유를 얻은 북한동포
특보 존슨 대통령 내한
대통령 선거 유세
역사영상융합연구팀의 뉴스영화 수집 사업에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소장되어 있던 <리버티뉴스(Liberty News>는 가장 중요한 수집 대상의 하나였다. 현재 NARA에 소장되어 있던 624편 전량을 수집하였으며, 에피소드별로 총 3,718건의 영상에 대한 1·2차 카탈로깅을 완료하였다. 이 중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 뉴스를 선별한 뒤, 총 138편에 대하여 해제를 작성하였다.
1952년부터 1967년까지 제작된 <리버티뉴스>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502부대 사진통신대로 파견된 영화담당자들이 촬영한 다큐멘터리 필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52년 미군은 뉴스영화 제작을 주한미공보원(USIS-KOREA로 이관했다. 미공보원은 막대한 자금과 전문 인력을 투입하여 자체적으로 창원에 상남스튜디오를 만들었는데, “리버티프로덕션”으로 불렸던 이곳에서 1967년까지 기록영화와 다양한 문화영화가 제작되었다.
<리버티뉴스>는 극장 상영뿐 아니라 미문화원 상영과 이동영사 상영 등을 통해 1960년대 중반까지 가장 대중적이고 강력한 소식의 전달자로 기능했다. 특히 1950년대 라디오와 같은 방송매체가 부족하고 농촌 지역의 문맹률이 높은 상황에서 영화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양한 수준의 한국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였다. 해방 이후 한국 정부와 한국 영화인들에 의해 제작되던 뉴스영화 제작이 한국전쟁의 발발로 잠정 중단되었던 시기에 시작된 <리버티뉴스>는 전투 현장이나 후방의 상황을 찍은 보도영화와 기록영화로 한국인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1953년 <대한뉴스>가 제작되기 시작한 후, 극장에서는 <리버티뉴스>와 <대한뉴스>를 선택적으로 상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