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혼_1965
2. 밀수합동수사반특별활동_1966
3. 월남전선_1966
4. 전진하는 스카웃_1966
5. 치맛바람_1966
6. 약진하는 수산업_1967
7. 큰 공장과 작은 공장_1967
8. 파월장병위문단_1967
9. 팔도강산_1967
10. 속 팔도강산_1968
11. 속팔도강산 2_1968
12. 어둠을 헤치고_1968
13. 강강수월래_1969
14. 싸우면서 건설하자_1968
15. 오붓한 잔치_1969
16. 한글_1969
17. 행주치마_1969
18. 붉은 만행을 규탄하자_1970
19. 내일의 팔도강산_1971
20. 위험약물(마약_1971
21. 신영균 씨의 어느날_1972
22. 외국의 새마을_1972
23. 자가용타고친정가세_1972
24. 김치_1973
25. 새마을만세_1973
26. 영농수첩_1973
27. 한국미술 2000년전_1973
28. 한국의 어린이들_1973
29. 리틀엔젤스유엔공연_1974
30. 가사호접_1975
“문화영화”라는 용어는 정확한 개념 규정이 어려운 용어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문화영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독일 우파(UFA의 ‘Kulturfilm’이라는 용어를 수입하여 ‘문화영화’로 번역하고 이를 국내 언론에서 차용(동아일보 1926년 5월 16일했을 때부터였다. 이 시기부터 문화영화는 “극영화가 아닌 것”(일제 말기, “실사 기록을 위주로 한 것”(이승만 정권기, “사실 기록을 위주로 제작된 영화”(박정희 정권기 등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어 왔다. 또, 문화영화는
<팔도강산>
(배석인, 1967과 같이 극화된 영화부터
<홍길동>
(신동헌, 1967과 같은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문화영화라는 개념이 이 같은 복잡성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하여, 본 연구팀은 한국정책방송원 KTV국민방송의 e영상역사관(www.ehistory.go.kr에 ‘분야별 기록영상’으로 분류된 이 영상들을 “문화영화”로 분류한다. 카탈로깅한 영상들이 주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영상이며, “문화영화”는 이 시기 국립영화제작소 제작 영화들을 통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영화를 제작한 국립영화제작소는 1948년 7월 발족된 공보처 공보국 영화과로 시작되었다. 공보국 영화과는
<대한뉴스>
를 비롯한 뉴스영화와 문화영화를 생산했으며, 1961년 6월 공보부 공보국 영화과로 재편되면서 국립영화제작소(소장 이성철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이후 1994년 국립영상제작소로 개명했다가 1999년 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 2004년 영상홍보원, 2007년 한국정책방송원으로 재편되었다. 1950년대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했던 문화영화들은 현재 한국정책방송원 KTV국민방송의 e영상역사관 홈페이지의 ‘분야별 기록영상’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관련 시기 영상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 부석사 시찰>
을 시작으로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