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5
<신간회 창립 80주년 기념사>
21세기 한국민족주의 그리고 신(新신간회 | 9
<신간회 창립 80주년 축사>
화해와 협력의 신간회 정신 | 17
안재홍과 신간회·윤대식
Ⅰ. 머리말 | 25
Ⅱ. 노마연잔두(駑馬戀棧豆의 경고-타협과 비타협의 경계 | 28
Ⅲ. 백열(白熱의 삶-신간회 참여 | 39
Ⅳ. 노마(駑馬도 십가(十駕할 수 있을까?-신협동의 호소 | 52
Ⅴ. 맺음말 | 66
참고문헌 | 69
신간회의 창립과 민족단일당의 이론·김인식
Ⅰ. 머리말 | 75
Ⅱ. 민족주의 좌익전선론과 신간회의 창립 | 77
Ⅲ. 민족단일당론과 신간회의 민족협동전선화 | 92
Ⅳ. 맺는말 | 103
신간회운동과 민족주의좌파 세력·성주현
Ⅰ. 머리말 | 109
Ⅱ. 1920년대 민족운동 세력의 분화와 민족주의좌파의 형성 | 111
Ⅲ. 민족주의좌파의 형성 | 116
Ⅳ. 신간회 창립과 민족주의좌파의 동향 | 125
Ⅴ. 민족주의좌파의 신간회 활동 | 136
Ⅵ. 맺음말 | 142
ML당계 사회주의자들의 민족통일전선론과 신간회·이현주
Ⅰ. 머리말 | 149
Ⅱ. 신간회 초창기의 운동론 | 150
Ⅲ. 당의 붕괴와 운동론의 변화 | 157
Ⅳ. 반제협동전선론과 신간회 해소 | 167
Ⅴ. 맺음말 | 174
신간회의 사회민족주의적 성격에 대한 검토·이문원
Ⅰ. 머리말 | 179
Ⅱ. 신간회 성립의 배경 | 182
Ⅲ. 사회민주주의의 발전과
1927년 2월 15일은 신간회(新幹會가 창립된 날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점한 이후 우리 민족은 야만적인 폭력을 앞세운 무단통치하에서 절망과 회한의 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서러운 “10여년의 머슴살이” 끝에 우리는 마침내 다시 일어나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의해 민주공화주의의 복음이 아시아대륙에 처음으로 전해졌고, 이에 우리 선열들은 크게 고무되어 비록 왕조는 망했지만 백성들이 나서면 새로이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생각에 민족자존과 독립에의 의지를 되살려 마침내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을 성사시킨 것이었다. 이후 선열들은 비록 나라의 형체(形體는 없어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혼(魂을 다시 일깨우고 실낟같은 희망이라도 끝까지 잡고 돋우면서 온갖 회유와 ‘합법적’ 강압을 앞세운 일제의 ‘문화정치’에 맞서야 했다. 어쩌면 무단통치보다 더 견디기 힘들고 괴로웠던 민족위기였다. 이런 참담한 지경에서 그래도 “고목에서 새싹이 움튼다”(古木新幹는 소망으로 민족지도자들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족유일당”으로 힘을 합쳐 다시 일어나 일제의 민족말살 획책에 맞섰으니, 그것이 바로 신간회운동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동안 신간회를 잊고 지냈다. 한국현대사는 해방, 전쟁, 가난, 그리고 끊임없는 안보불안으로 무엇보다 생존이 급했던 시대였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근대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온고지신(溫故知新하며 나와 나의 역사, 우리와 우리의 역사를 찬찬히 되돌아보며 그 속에서 다시 힘과 소망을 얻어 나와 나라를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로 자라게 할 말한 여유와 성찰이 부족했다.
윤대식 박사는 “안재홍과 신간회”에서 안재홍이라는 특정 행위주체와 신간회라는 활동 공간 및 맥락의 교차를 통해 안재홍의 정치적 사유와 삶의 일관성을 추적, 신간회가 안재홍이라는 지사적 투사가 자신의 정치적 사유와 삶의 일관성을 정합한 대상이었고, 이를 위해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