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이른바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한국경제는 상당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런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데에 중동건설특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일쇼크는 한국경제에 위기상황을 초래했지만, 오일머니로 인해 상대적으로 투자여건이 좋아진 중동지역 산유국에서 건설수요가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건설사업을 수주한 것을 기점으로 198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한국 건설기업과 총 인원 100만 명에 이르는 건설노동자들이 중동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중동건설 붐이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기술발전을 이루었다. 국가 차원에서는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고용이 창출되는 효과를 누렸다. 그러나 1970년대 중동건설 붐은 이와 같은 거시적 경제효과를 논의하는 데에 그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1970년대 중동지역 건설 진출을 현국현대사의 중요 사건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현재 한국경제에 영향력이 막강한 대기업 다수가 중동건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업문화와 중동건설 붐 사이에는 상당한 유관성이 있다. 둘째, 10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중동건설 현장에 투입되었다는 표면적인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사회와 가족문화, 한국인들의 가치관에 미친 영향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중동건설 현장에 한국기업이 진출하게 된 이전의 사정들, 일테면 주한미군시설 건설공사로부터 베트남전쟁 중에 한국기업과 노동자들의 베트남 진출이나 태국 등 동남아 지역의 건설사업에 참여했던 사실들과 중동건설현장에 한국기업과 노동자들이 진출한 사실이 맺고 있는 관계를 면밀하게 살핌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에 중동지역 건설 진출은 매우 중요한 정치·사회적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책을 내면서 中
[편저자 및 구술자 소개]
-편자
정성화 | 명지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