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이 건립된 16세기 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양산보와 그의 아들·손자 3대만을 다룬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쇄원 500년 역사 가운데 1/3인 150년 역사만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나머지 350년의 역사를 밝혀야 소쇄원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서 필자는 <소쇄원 사람들 2>를 집필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17세기 중반 양산보의 증손자대부터 19세기 중반 7대손까지 200여 년의 역사를 다루려고 한다.
이 시기만을 다루려고 한 데에는 지면이나 시간상의 한계 외에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시기가 소쇄원의 새로운 도약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시기에 소쇄원 사람들이 당시 조선 사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매우 독특한 교유 문화를 꽃피웠기 때문이다.
셋째, 이 시기는 소쇄원 사람들이 중앙의 핵심 서론·노론 세력과 유대를 강화하며 호남 인맥의 창구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독특한 역할을 수행했던 소쇄원의 모습을 드러내보고자 이 책에서는 17~19세기 200년간을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태인의 명사 양몽우, 3대 어의 양제신, 중흥주 양진태, 종통 수립자 양택지, 유명 시인 양경지, 문집 발간인 양학겸, 품종개량자 양제신 등 7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렇게 정리하면 500년 가운데 총 350년이 연구된 셈이고, 나머지 150년이 향후 과제로 남는다.
이 책의 발간 의의는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17~19세기 소쇄원을 집중 조명했다는 데에 있다. 그동안 소쇄원에 대해서는 16세기, 그것도 양산보에 대해서만 집중 조명되다가 최근에야 19세기까지 다룬 연구서가 나올 정도로 일천한 수준이었다. 연간 1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의 발길이 닿는 소쇄원에 대한 개발론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초적인 연구가 없이는 그 어떤 모색도 사상누각에 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