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나랏빚을 청산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지 11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이는 자산가, 전·현직관료, 상인, 계몽론자 등에 의하여 경북 대구에서 깃발을 올렸다. 이를 신호탄으로 국내는 물론 국외 한인사회로 ‘들불처럼’ 파급되어 나갔다. 각종 미담사례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받던 백정·걸인·도둑·죄수·주모 등과 어린이까지 경쟁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참여인원은 12년 뒤에 일어난 3·1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대단한 열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일제의 분열공작으...
2017년은 나랏빚을 청산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지 11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이는 자산가, 전·현직관료, 상인, 계몽론자 등에 의하여 경북 대구에서 깃발을 올렸다. 이를 신호탄으로 국내는 물론 국외 한인사회로 ‘들불처럼’ 파급되어 나갔다. 각종 미담사례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받던 백정·걸인·도둑·죄수·주모 등과 어린이까지 경쟁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참여인원은 12년 뒤에 일어난 3·1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대단한 열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일제의 분열공작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한국인 스스로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일깨우는 삶의 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참여를 통한 소중한 경험은 사회적인 책무를 절감하는 든든한 정신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누구도 이에 공감한다.
국채보상운동 참여는 이후 우리 역사에 면연히 독립정신과 민주화정신으로 계승·발전되었다. 일제강점기 물산장려운동이나 농촌계몽운동 등은 이와 깊은 맥락과 맞물려 있다. 일제의 악랄한 수탈에 의한 만성적인 곤궁함에도 서로 돕는 미덕을 발휘하였다. 운명공동체로서 인식과 실천은 생존권을 지키는 귀중한 정신적인 유산임에 틀림없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저력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진다. 특히 1997년 IMF사태 때 보여준 ‘금모으기운동’은 90년 만에 국채보상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