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에게 ‘은둔(隱遁의 나라’라고도 알려진 한국(韓國은 서세동점이 시작된 후 근대문물과 과학문명을 받아들이려고 힘겨운 노력을 하였다. 그런 중에서도 한국을 둘러싼 주변 4강은 때로는 평온한 선린우호관계가 유지되어 서로 협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역사 발전의 관점에서 한국과 주변 4강은 근원적으로 각기 자기들 나라의 무역증진이나 자국의 이익쟁취라는 근원적 난제를 띠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국주의 열강의 동양 여얼(餘孼”인 일본은 이틈을 타서 한국을 강점하고 그들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은 서로 풀 수 없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유지나 동양평화를 외쳤지만, 실상은 첫째, 한국에 대한 강점과 지배를 완성시키는 일이고 나아가 그들이 갈망하는 이상국가인 지대물박(地大物博한 중국대륙으로의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하여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핑계로 군국화환 군사력을 앞세워 서슴없이 청일·러일전쟁을 도발하였고 한편으로는 한국을 강점하고 한국민을 식민지 조선인으로 만들어 갔다. 일본은 이런 속에서도 겉으로는 근대 입헌국가(立憲國家 참설을 목표로 하였다. 현실로 벌어지는 현상은 문무겸비한 근대법치국가를 만들어간 것이다.
일본은 이때 이를 명분삼아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을 도발하여 한국을 서세동점의 세력에서 교묘히 이탈시켜 한국 식민지 지배를 완성하려는 속셈이었다. 나아가 중국대륙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에 영미세력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종전(終戰 중개자로 나서게 하여 그들 강국도 일본의 침략을 방조한 셈이 되었다. 가쓰라-태프트밀약과 영일·제일이차동맹을 십분 이용한 것이다.
또한 1905년에 일본은 마침내 한국의 부강을 실현시킨다는 명목으로 ‘보호국’을 확립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이어 1910년에는 한국에 대한 병탄(倂呑을 완성시켜 그들 식민지 조선(朝鮮이 되게 하였다. 이 무렵 이 같은 침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