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1. 민족주의자로 자부하는 한 노인의 초라한 죽음
Ⅱ. 선태섭의 성장 배경
1. 출생과 가족
2. 출생지역의 역사사회학적 맥락
3. 교육환경
Ⅲ. 선태섭, 사회운동에 투신하다
1. 보통학교 시절의 사회운동
2. 신문기자 생활과 활동가들과의 만남
3. 수의위친계(壽衣爲親契 혹은 守義爲親契 활동
4. 1920년대 구례지역의 사회운동과 선태섭
Ⅳ. 일제하 전남지역의 공산주의운동과 선태섭
1. 1920년대 중반 전남지역의 사상운동과 공산당운동
2. 공산당운동과 선태섭
3.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될 때까지의 행적들
4. 그 외 각종 사회활동 및 전해오는 이야기들
Ⅴ. 1945년 해방, 꿈을 향해 날다
1. 구례지역에서의 활동
2. 전남지역의 새로운 질서를 위해
3.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
Ⅵ. 북으로, 그리고 다시 남으로
1. 북으로 간 선태섭
2. 다시 남으로
Ⅶ. 인간 선태섭, 분단의 벽에
사회학에서는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대체로 사회적 조건이나 환경, 역사적 맥락 등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크다. 사회문화적 조건을 벗어나서 개인의 천재성만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개인의 천재성 역시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은 사회적(혹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지극히 당연한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개인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독특한 존재이며, 유사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동물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 속에는 한 개인의 특이한 행동이나 태도, 성향, 생각 등이 매우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 사람의 삶 속에 그 시기의 갈등과 고민이 담겨있는 경우도 많다. (머리말 中
1975년 3월 19일 마포구 연남동에서 70세의 노인이 사망하였다. 그는 사는 동안 모두 열 명의 자식들을 낳았지만, 정작 자신이 죽을 때는 어떤 자식도 그의 임종을 지킬 수가 없었다. 자식들 중 일부는 북한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지만, 남한에만 해도 세 명의 아들과 네 명의 딸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 누구도 그의 죽음을 지켜볼 수 없었다. 당시 그의 집은 중앙정보부와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일반인들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었다. 1975년은 긴급조치시대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정보당국에 의한 권위주의 통치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그래서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은 일반인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시기에 한 사람이 병으로 죽어가는 현장을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이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자식들의 사업체는 국세청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것과는 별도로 자식들의 사업체에 대해 이른바 ‘반공법’사건 수사가 진행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