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용대? 의용봉공대? - 군대(Military Volunteer? 자원봉사?
두 장의 이재증명서
의용대! 의용대란 무엇인가
제1장 일본 국민의용대 제도 - 일본본토결전을 위한 마지막 국민조직
제국 일본, 패배를 향한 첫걸음 - 1941년 12월 7일, 태평양전쟁
1944년부터 패전까지, 일본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국민의용대 조직, 언제부터
일본 국민의용전투대를 조직하다
일본 국민의용대 조직, 지역과 직장별 조직
의용병역법을 제정하라
일본 의용병, 임무와 권리는
패배를 앞두고 - 국민의용대와 국민의용전투대
제2장 신문기사를 통해 본 식민지 조선의 국민의용대 제도
식민지 조선, 생산방위 전열에 동참하라
국민의용대 제도 - 두 번째 단계, 의용병역법
프로파간다로 일관한 국민의용대 제도 관련 신문기사
‘제도’로 남은 국민의용대
제3장 부록
관련 주요 연표
국민의용대 관련 매일신보 기사 목록(게재일순
국민의용대 관련 경성일보 기사 목록(게재일순
신문기사 원본
관련 법령 등 목록(제정일 순서
의용병역법
주요 각의결정 자료
[감感동動 6 - 1945년 국민의용대 제도 -패배의 종착역에서]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가 2012년에 발간한 사진집 『조각난 그날의 기억』, 97쪽에는 두 장의 이재증명서가 실려 있다. 히로시마제지소(廣島製砥所가 발급한 원자폭탄피해자 입증 자료이다. 두 장 가운데 하나는 ‘8월 6일 공장의용대 소속 김자규태金子圭太(본명 김규태가 출동했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내용이다. 조선청년 김규태가 원폭피해를 입게 된 배경은 의용대이다.
의용대!
의용대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
[감感동動 6 - 1945년 국민의용대 제도 -패배의 종착역에서]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가 2012년에 발간한 사진집 『조각난 그날의 기억』, 97쪽에는 두 장의 이재증명서가 실려 있다. 히로시마제지소(廣島製砥所가 발급한 원자폭탄피해자 입증 자료이다. 두 장 가운데 하나는 ‘8월 6일 공장의용대 소속 김자규태金子圭太(본명 김규태가 출동했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내용이다. 조선청년 김규태가 원폭피해를 입게 된 배경은 의용대이다.
의용대!
의용대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의 위급 상황에서 자발적 참여로 조직되는 군대’이다. 조선시대와 구한말의 ‘의병’을 연상하게 하는 용어이다. 가장 긍정적인 의용대 이미지는, 영화 ‘암살’이나 ‘밀정’을 통해 한국 사회에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킨 ‘조선의용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김규태가 부상을 입게 된 의용대는 일본이 패전에 임박해 급조한 국민의용대이다. 국민의용대는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본토결전 과정에서 방공防空과 공습피해복구 등에 전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 만든 국민조직이다. 1945년 3월 23일 일본 각의결정 「국민의용대 조직에 관한 건」을 근거로 탄생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 국가권력이 구축한 마지막 패배의 종착역이었다.
일본 본토에서는 공습 뒤 처리 등 보조적 군사 활동을 담당했고, 운영 기간도 5개월 남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