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30억 번 뛰는 동안
삶에서 죽음까지
박동하는 심장. 그것은 잠시도 쉬지 않고 생명을 지키는가 하면, 순식간에 거둬들이기도 한다. 그만큼 절대적인 기관으로서 심장은 우리 몸의 장기들 가운데 유일하게, 또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심장은 매초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할 만큼 움직이는 유일한 기관이다. 두근두근. 쿵쾅쿵쾅. 오로지 심장만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것은 속삭이고, 외쳐대고, 침묵하고, 때로 비명을 지른다. 인간은 오랜 시간 그러한 박동에 자극받고, 그것을 이해하려다 미궁에 빠졌다. 그래선지 심장은 온갖 은유에 둘러싸여 있는 장기이기도 했다. “다른 어떤 신체 기관도, 어쩌면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어떤 사물도 그토록 많은 은유와 의미로 점철되지는 않았다. (… 심장은 삶과 죽음을 부여하는 동시에, 은유를 부추긴다.”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별」 속 남자는 비통한 얼굴로 한쪽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이렇게 심장을 마음과 연결짓는 은유는 예술작품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도 깊이 들어와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실험을 하다 개구리의 가슴께를 까맣게 태워버리곤 서럽게 우는 그를, 어머니는 찬찬히 타일렀다. “다른 실험을 해보는 게 어떻겠니? 이런 실험을 하기엔 네 심장이 너무 작은 것 같구나.” 우리말에도 정확하게 같은 표현이 존재한다. “심장이 작다: 겁이 많고 대담하지 못하며 통이 작다.”(표준국어대사전 또한 우리는 가슴이 미어질 때 “심장이 터진다”고 하고, 조마조마하거나 흥분될 때 “심장이 뛴다”고 하며, 어떤 말이나 경험이 사무칠 때 “심장에 새긴다”고 한다. 낙담했거나 두려울 때 영어로 “lose one’s heart[심장을 잃었다]”라고 말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말할 때 인도어로 “Dil himmauth kar[심장을 챙겨라]”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심장이 빌려준 용기로 바로 그 심장을 갈랐다”라는 표현을 썼다.
심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