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_004
제1장|이와타씨가 사장이 되기까지
고교시절, 프로그램이 가능한 계산기와의 만남 _014
대학시절, 컴퓨터 매장에서 만난 동료 _016
HAL연구소의 여명기와 패미컴 발매 _019
15억 엔 대출로 시작하다 _022
반년에 1회, 전 직원과의 면담 _025
만약 도망친다면 평생 후회한다 _030
이와타씨의 말 조각, 첫 번째 _035
제2장|이와타씨의 리더십
우리가 잘하는 것은 뭘까 _040
병목이 어디인지를 찾아낸다 _043
성공을 체험한 집단은 변하기 어렵다 _046
좋은 의미에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 _048
면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 _050
마음 놓고 “바보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_052
프로젝트가 잘될 때 _055
나 외의 다른 사람에게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 _056
이와타씨의 말 조각, 두 번째 _060
제3장|이와타씨의 개성
‘왜 그런지’를 알고 싶다 _070
보상을 찾아내는 능력 _072
프로그램을 만든 경험이 회사 경영에 활용되다 _076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지체 없이 각오를 다진다 _078
“프로그래머는 노(No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는 발언 _081
당사자로서 후회가 없도록 우선순위를 정한다 _082
이와타씨의 말 조각, 세 번째 _086
제4장|이와타씨가 믿는 사람
아이디어란 여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 _092
미야모토씨의 ‘어깨 너머의 시선’ _095
컴퓨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미야모토씨 _100
를 다시 살리는 두 가지 방법 _102
‘어른도 아이도 누나도’ _105
이토이씨에게 이야기한 업무철학 _108
야마우치 히로시씨가 했던 말 _110
이와타씨의 말 조각, 네 번째 _114
제5장|이와타씨가 지향하는 게임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게임기 _124
우선 구조를 이루는 놀이를 만든다 _128
황당한 주장에서 시작한 논의라도 헛되지 않다 _130
기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야말로
15억 엔 대출, ‘게임보이’의 부진…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던 이와타씨의 비결은?
이와타 사토루가 사장으로 취임하던 해에 HAL연구소는 경영 위기에 빠지면서 15억 엔의 빚을 감당해야 했다. 42세의 젊은 나이로 닌텐도의 사장이 되었을 때도,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경쟁사에 밀려 매출 부진을 겪고 있었다. 이와타씨가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만약 도망친다면 평생 후회한다”라고 다짐하며 회사의 가장 바쁘고 힘든 곳으로 찾아갔다. 일례로 HAL연구소의 사장이 되고난 후 한 달의 시간을 모두 전 직원과의 면담을 위해 사용하면서 직원과 동료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또한 그는 “성공을 체험한 집단은 변하기 어렵다” “현재의 연장선상에 미래는 없다”라는 일념 하에 패미컴과 슈퍼 패미컴의 성공의 영광 아래 있던 닌텐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기를 만들고자 했다. 닌텐도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이와타씨의 경영철학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개발책임자로 참여한 <별의 커비> 시리즈의 성공은 HAL연구소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고 닌텐도 DS, Wii의 탄생은 닌텐도의 부흥기를 이끌어냈다.
“단순해질수록 매력적이다”
닌텐도가 게임 업계의 애플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이와타 사토루가 게임 개발에 있어 가장 중시한 것은 ‘게임 인구의 확대’이다. 그 결과, 닌텐도 DS는 기존의 코어 유저를 타깃으로 하던 고성능의 게임기에서 벗어나 라이트 유저에게도 ‘무해한 게임기’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또한 이와타씨는 ‘어른도 누나도 아이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오랜 시간 공들여 가정용 게임기인 Wii를 만들었고, Wii의 컨트롤러에 ‘리모컨’이라는 이름을 붙여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 전원을 켜듯 게임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환경을 조성했다.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닌텐도 DS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