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해와 우정의 길을 여는 한 삽의 흙
“‘절에 위패가 많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요. 방치하기도 그렇고, 좀 봐주었으면 해요.’라고 다나카 후미코 할머니가 말했다. 위패에 쓰인 사망 연월일은 1935년부터 1945년까지 10년간이 대부분이었다. 1931년에 시작해 15년간 계속된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망자들의 위패인 것이다. [슈마리나이댐] 전망대 콘크리트 위령비에 적혀 있던 ‘순직자’라는 글자가 뇌리를 스친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댐에서 가장 가까운 절이다. 방금 전에 본 댐이 전쟁 때 건설되었다면 이 위패는 공사 희생자의 것이 아닐까.”
_본문 89쪽
1976년 9월 중고차를 처음 마련한 기념으로 친구와 함께 슈마리나이댐과 주변 호숫가 드라이브를 즐기던 가을날에 일어난 작은 사건이었고, 우연한 만남이었다. 그러나 홋카이도에서도 손꼽히는 대설 지역인 슈마리나이의 고즈넉한 사찰 고켄사(광현사에서 ‘목공 작업을 하고 남은 나무판을 겹쳐 만든 듯한’ 조잡한 위패를 만난 도노히라 요시히코의 삶은 이제 전과 같을 수 없었다.
“나는 일본 최초의 식민지인 홋카이도로 이민을 온 식민 지배인의 자손이다. 내가 소속된 국가는 아시아를 식민지로 취급하고 침략 전쟁을 이어 온 어두운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전쟁 직후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뒤이어 절을 물려받고 승려가 되었다.”
_본문 8~9쪽
“홋카이도 시골의 절에서 태어나 승려 후계에 대한 저항감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딱히 확실한 목적이 있을 리 없던 내가 대학에 들어가 선택한 것은 철학이었고, 사회과학에 관심을 갖고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_본문 49쪽
“고등학교 동창생 중에 재일코리안이 있었다. 고교 생활 3년간 매일 같은 기차를 타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학교를 다녔지만, 그는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동창생 가운데 누구도 그가 조선인인지 몰랐고, 그럴 가능성조차 헤아리지 못한 채 그냥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