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북한을 떠나오는 순간 국가라는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망명자가 되는데, 또 하나의 조국이 되어야 할 대한민국은 그들을 탈북 마케팅에 이용하는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9쪽
탈북민을 언제든 필요에 따라 도구처럼 활용하는 태도의 정점에 바로 탈북민 간첩 조작 사건들이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의 사건을 취재해 《간첩의 탄생》이라는 책을 출간했던 저자 문영심은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민들레: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의뢰로 유우성 씨를 포함해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며 간첩 혐의를 받았던 탈북민들을 인터뷰했고, 그를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간첩 혐의를 받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탈북민 전체가 경험한 석연치 않은 탈북 경로와 탈북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를 기록했다. 한국행을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 국정원과 브로커의 긴밀한 네트워크 속에서 탈북민이 어떻게 거래의 대상이 되는지,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을 이 사회가 필요에 따라 어떻게 이용하는지, 이런 구조 속에서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정착하는 데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국정원 합신센터에서 간첩으로 조작된 탈북민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낱낱이, 그리고 생생하게 드러냈다.
‘또 하나의 조국’으로 오는 길
탈북민의 숫자가 많아졌다고 해도 북한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은 여전히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한국으로 오는 대부분의 탈북민은 중국으로 넘어가 제3국(주로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중국에서 넘어간 제3국의 난민수용소에서 지내는 기간만 대부분 한 달 전후다. 중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중국 공안에 붙잡히면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한국으로 보내지 않고 북한으로 송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탈북을 위해 탈북 브로커에게 큰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천신만고 끝에 ‘또 하나의 조국’에 도착한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망명자’가 되어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 산하의 합신센터의 조사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