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옮긴이의 말
1_ 고대 은 왕조는 실재하였다 : 갑골문
세기말의 대 발견 |갑골문 발견의 진실 |갑골문 해독
은 왕조의 실재를 둘러싼 논쟁 |갑골문의 정인과 서계자
2_ 은·주 혁명의 증인? : 서주 금문과 이궤
은 왕조의 멸망|서주 청동기 이궤의 발견 |서주 금문의 서체와 계보
『상서』 「대고」와 서주 갑골
3_ 공자가 예언한 ‘집안 소동’의 전말 : 후마맹서
공자의 예언 |회맹의 시대|진나라 조씨의 내분
춘추 전국 시대의 필기문자의 실태
4_ 수정이 불가피한 유교사의 통설 : 곽점 초간·전국 초죽서
두 개의 현대판 급총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 유교사의 통설
전국 시대 문자의 분립과 혼란
상해박물관장 전국 초죽서의 신빙성
5_ 시황제 시대의 법률 지침 : 수호지 진묘 축간
수호지 진묘 죽간의 발견 |진 제국의 허상과 실상 | 진 예서와 그 기원
6_소생하는 한대 학술의 세계 : 마왕퇴 한묘 백서
마왕퇴 한묘 발굴 |중국 고대 과학사에서의 대발견
『천문기상잡점』과 망기술 |진말·한초 필기문자의 다양한 실태
대나무와 비단에 쓰다
7_ 잃어버린 『손자』의 발견 : 은작산 한묘 죽간
두 사람의 손자 |은작산 한묘 죽간 『손자』의 발견
진에서 한으로, 필기문자의 연속성
위서의 오명을 씻은 기록물
8_ 삼국지 시대에 싹튼 해서의 생생한 육성 : 주마루 삼국오간
경탄할 만한 수량 |주마루 삼국오간의 내용과 의의
해서의 성립과 종요
주마루 삼국오간은 왜 우물에 매장되었나?
9_ 서성 왕희지 글씨를 찾아서 : 누란 출토 문서
사막에 묻힌 왕도, 누란의 발견 |오타니 탐험대의 누란 조사
이백 문서의 수수께끼 |이백 문서와 왕희지
누란 문서의 번짐 막기
10_ 당대인이 연습한 왕희지의 글씨 : 투루판 출토 문서
역사의 음과 양 |왕희지 「상상황기」 첩의 발견
왕희지 「상상황기」 첩의 성격 |잃어버린 「상상황기」 첩의 수수께끼
왕희지
출판사 서평
“사실(史實이 소설보다 극적이다”
19세기 말, 은 왕조의 실재를 증명한 갑골문 발견 이후, 20세기는 실로 ‘발견의 세기’였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 시황제의 군사 조직인 병마용 갱을 발견한 이듬해인 1975년 호북성 운몽현에서는 진 시황제 시기 관리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112호 무덤의 유골 주변에는 진의 예서로 쓰인 1,155매의 죽간이 발견되었다. 이른바 ‘수호지 진묘 죽간’은 『사기』나 『한서』 등 문헌에서 잘 알 수 없던 진나라 법률의 자세한 조항이었으며, 진대의 법가적 통치 실상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사실(史實이 소설보다 극적이다”
19세기 말, 은 왕조의 실재를 증명한 갑골문 발견 이후, 20세기는 실로 ‘발견의 세기’였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 시황제의 군사 조직인 병마용 갱을 발견한 이듬해인 1975년 호북성 운몽현에서는 진 시황제 시기 관리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112호 무덤의 유골 주변에는 진의 예서로 쓰인 1,155매의 죽간이 발견되었다. 이른바 ‘수호지 진묘 죽간’은 『사기』나 『한서』 등 문헌에서 잘 알 수 없던 진나라 법률의 자세한 조항이었으며, 진대의 법가적 통치 실상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73년에는 살아 있는 듯한 미라가 발견되어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마왕퇴 1호 한묘 옆의 3호 한묘에서는 비단에 쓰인 기록문(백서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의약, 천문, 군사, 사상 등 다방면에 걸친 한대 학술의 실태를 보여주었다. 또한 바로 그 무렵 신강 자치구 투루판에 산재하는 고분군에서 당나라 사람들이 연습한 왕희지의 글씨가 발견되어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일면이 드러났다.
은·주 왕조 교체를 증언한 ‘서주 금문과 이궤’, 유교사의 통설을 뒤집은 ‘곽점 초간과 전국 초죽서’, 『손자』가 위서라고 하는 오명을 벗게 한 ‘은작산 한묘 죽간’등 20세기 일련의 출토문자의 발견은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문자가 역사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문자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