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서론
독일 재건이라는 “기적”
전후 사상의 토대-바이마르공화국과 그 불만들
망명자들과 미국의 냉전-지식과 권력
1장 “책임감 있는 엘리트”에 대한 추구 : 카를 J. 프리드리히와 고등교육 개혁
프로테스탄트적 정당성과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엘리트 교육
미국에서 하이델베르크의 사명-새로운 미국 학계의 창설
냉전대학들-냉전 시기 미국과 독일의 “책임감 있는 엘리트”
2장 사회주의적 개혁, 법의 지배, 노동 지원 활동 : 에른스트 프렝켈과 “집단적 민주주의” 개념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에서의 민주주의, 노동, 법
사회민주주의와 미국의 힘-미국과 한국에서의 프렝켈
독일 좌파와 냉전
3장 보수적 가톨릭 신앙과 미국의 자선 활동 : 발데마르 구리안, “인격주의적” 민주주의, 반공주의
라인란트에서의 가톨릭 신앙, “인격주의”, 민주주의-구리안의 사상적 기원들
“전체주의 이론”으로 나아가는 길-망명 기간 중 나치즘에 대항한 인격주의 캠페인
인격주의와 미국의 자선 사업-범대서양 민주주의와 반공주의
4장 개인적 자유와 “전투적 민주주의” : 카를 뢰벤슈타인과 공격적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내부의 투쟁
“전투적 민주주의”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미국 외교
냉전 시기 “전투적 민주주의”-서독에서의 자유주의와 반공주의
5장 국제연맹에서 베트남까지 : 한스 모겐소와 국제관계의 현실주의적 개혁
국제정치, 법, 전쟁
모겐소와 냉전의 지배층
권력과 도덕성-베트남 개입 반대
결론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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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정당화하는
역설적 이데올로기의 기원은 무엇인가?
모순적인 논쟁
바이마르의 논쟁은 모든 면에서 모순적일 수밖에 없었다. 30년 전쟁 이후 유럽에서 가장 발전이 늦은 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독일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수적인 것은 당연했고, 1차 대전의 패배는 독일로 하여금 (독일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가장 진보적인 체제를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서 취급하도록 요구했다. 진보, 즉 민주주의를 수용해야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었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으니 모순은 불가피했다. 파시즘의 등장은 모순적 논쟁을 파괴적으로 중단시켰다. 논쟁의 참가자들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을 떠났고 미국은 이들의 주장을 자기의 필요(반 사회주의, 반 소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했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는 곧 냉전과 동의어였다.
그린버그가 소개한 5명의 망명자들(카를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프렝켈, 발데마르 구리안, 카를 뢰벤슈타인 그리고 한스 모겐소의 이론들은 한결같이 모순적이다. 프리드리히의 이론은 국민주권을 엘리트의 책임으로 대체했고, 프렝켈의 집단적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했다. 구리안의 이론은 민주주의를 종교적 신앙으로부터 유추하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종교적으로 옹호했다. 뢰벤슈타인의 전투적 민주주의가 미친 영향은 라틴아메리카의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고, 모겐소는 냉전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것은 보수주의에 이론적 일관성이 없다는 평가가 반드시 부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 일관성이 없는 이론, 정의조차 되지 않은 개념이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이 모순적인 가설들이 보수주의라는 이론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보수적 정치 현실에 수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훗날 프렝켈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