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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지사항書誌事項
대학장구大學章句
김진흥 서金振興 書, 목판본木板本 1책冊 71장張
사방쌍방광곽四周雙邊匡郭 28 · 5㎝x8㎝
자문序文, 숭정계묘崇禎癸卯(1663 송시열宋時烈
서제序題、전대학篆大學
권말卷末 세천축歲千丑(1661 김진흥 서金振興 書
2 필서자筆書者
이 책의 책판(冊板을 조각할 판하본(版下本을 필사한 김진흥(金振興은 1621년 광해군 3년에 태어난 본관(本貫 선산(善山 의 뛰어난 서예가이다. 자(字는 흥지(興之 또는 대이(行而?호(號는 송계(松溪라고 했다.
1654년 효종(孝宗 5년에 역과(譯科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나선 후, 전문학관(篆文學官 을 거쳐서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그러나 벼슬보다도 어려서부터 여이징(呂爾徵을 통하여 배운 전서(篆書에 심혈을 기울여 마침내 대성하였다.
특히 명(明나라의 주지번(朱之善이 지은 전결(家狀을 보고 8종의 글씨체에 통달하였다.
벼슬로서의 호군(護軍 이란 조선조의 정통적인 관리 등용시험(官吏登用試驗 인 문과(文科 급제자보다도 흔히 무관(武官 이나 시험을 거치지 않고 가문(家門의 여덕(餘德 으로 임용되는 관직이었기에 좀처럼 현관(顯官
이 될 수가 없는 자리였다.
그 때문이었는지 서화인명사서(書畵人名辭書에 의하면 김진흥은 서예로 거의 침식을 잊고 몰두하여 38체(體에 통하고 선전가(善豪家로서 명명(鳴名하였다.
서(善한 바에 大學章句家海心鏡 五卷、松溪名?家이 있는데, 송시열(宋時烈, 이서하(李瑞夏, 김만기(金萬基 여성제(呂聖曆 등의 서발(序政을 부(附하여 간행하였다고 통문관지(通文館志를 인용해서 평하였다.
한편 김만기의 전해심경(敎海心鏡 서문을 보면 김진흥은 오로지 글씨 공부에만 힘쓴 까닭에 아식한의(餓食寒衣라 하여 그야말로 춥고 배고프게 생활하면서 우리나라 전서의 대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하였다.
3 대학장구大學章句
김진흥이 특별한 관심을 두고 여러 가지 서체로 쓴 몇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