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느닷없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1부 어린 시민의 싹을 마르게 하는 가정
- 얼른 좀 일어나!
- 어른들 말에 말대답하면 안 돼
- 이게 다 널 위해서야
- 엄마 아빠 말 잘 들을게요
- 우리 단지는 부자가 사는 데래
- 제대로 썼는지 한번 보자
2부 거슬리는 어린 시민을 걸러 내는 학교
- 학생의 본분은 공부잖아
- 학생이 인권은 무슨 인권이야
- 체벌하지 않으면 도저히 가르칠 수가 없어요
- 교문 밖에 나갔다 와도 돼요?
- 배고파 봐야 세상을 알지
- 너희들은 동성애 하지 마라
3부 어린 시민의 언어를 빼앗는 사회
- 너 공부 못하면 저런 사람 된다
- 그래서 내가 알바비를 안 줬어요
- 아직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
- 얼마나 잘하는지 결과로 증명해 봐
- 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지
- 네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에필로그 - 어린 사람이 아니라 ‘어린 시민’입니다
무심코 던지는 어른들의 아픈 말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 않는 집이 얼마나 있을까? 바쁜 부모가 “얼른 좀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잔소리’라고 여겨지는 부모의 말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게 다 널 위해서야.”라는 말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일까? ‘학생’이라는 말이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럼 본분은 당연히 공부 아닌가?
필자는 자신이 세 아이에게 별생각 없이 건넸던 이런 말들이 어마어마한 폭력으로 가닿고 있었음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더하여 학교와 사회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하는 말에 숨겨진 억압의 기제를 읽어 내고,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예로, 우리는 어른에게는 말대답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말대답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필자는 민주주의는 다른 의견을 허용하는 체제라고 하며, 얼마든지 말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설득당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 역시 말대답하는 아이를 나무랐지만 이제는 그 말을 입에 담지 않고, 그런 자신이 퇴근하기를 아이가 기다리는 것 같다는 소소한 기쁨까지 전한다.
어른들 말 잘 들으라는 말, 공부 못하면 저런 사람이 된다는 말, 능력을 결과로 증명하라는 말 등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안에 아이를 위한다는 진심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을 것이며, 본인들이 씁쓸한 현실을 경험해 보았기에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어른들에게 묻는다. 그런 말들이 정말 괜찮은지. 필자는 어른들이 ‘교육과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억압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속되는 한 우리의 미래는 모두 공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어린 사람이 아니라 ‘어린 시민’입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가정과 학교에서 앎과 삶이 분리된 교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