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얼룩에 대하여
두리번 신
겨울 저녁에
벌판
봄은 손이 다섯
봉평의 어느 시냇물을 건너며
새로 생긴 저녁
그 라일락 밑에는
몇 개의 바위와 샘이 있는 정원
살얼음이 반짝인다
봄
라일락의 집
내면으로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밤길
겨울날
매화꽃을 기다리며
익살꾼 소나무
감나무 속으로 들어간 전깃줄
눈 그치고 별 나오니
석류나무 곁을 지날 때는
목돈
시인은
다시 오동꽃
봄밤에
치졸당기
산에 사는 작은 새여
빗물이고 잠이고 축대인
옛 친구들
팔당을 지남
내일도 마당을 깨겠다
절벽
폭설
고양이풀에 물 주다
새벽길
계단 옮기기
벌판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죠
나아가는 맛
정자(亭子 1
정자(亭子 2
정자(亭子 3
방을 깨다
흰 꽃
잎
나의 사치
눈 녹아
산기슭에서
이명을 따라서
측은을 대하고
발을 털며
장마
감나무 곁에 살면서
비단 有感
창을 내면 적이 나타난다
생강나무 아래
밤 강물
복면을 하고
시 읽던 바위
성(城이 내게 되비쳐주는 저녁 빛은
감잎 쓸면서
낮은 목소리
폭포
편자 신은 연애
연못
三이 오고
새 방에 들어 풍경을 매다니
- 해설 : 새로 생긴 저녁 / 김연수
기억과 현실 사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은근한 힘으로 서정의 세계를 가꾸는 장석남의 새 시집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18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장석남은 다섯번째 시집을 출간하였다. 첫번째 시집인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 우리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등장한 시인은 이후『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젖은 눈』『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평단의 인정과 독자들의 지지를 고루 받아왔다. 1965년생으로 80년대 후반의 참여문학시대를 살면서 나약하지 않은 서정의 정신을 꾸준히 보여준 장석남 시인, 그도 이제 어느덧 마흔의 나이에 이르렀다. 지금에 와서, “내 시를 보고/너무 이른 나이에 둥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옳아서/밤새도록 이 꺾인 고궁의 돌담 아래 앉아 있어 보는 것이다”(「內面으로」라고 넌지시 말해보는 시인이지만, 그도 알 것이다. 시집『새떼들에게로의 망명』에서 이미 ‘장석남류’의 서정 세계를 확실히 보여주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꺾인 고궁의 돌담 아래 앉아 있’는 동안 시인은 더욱 둥글게 서정의 기억을 가다듬을 것이다.
그것은 기억인가, 현실인가?【…】그곳은 “길들이 모두 집에 와 닿는 저녁이 와도/빈집들은 이 마을을/빈 마을 이외로는 만들지 못”(「겨울 河口」, 『새떼들에게로의 망명』하는 스산한 곳이다. 그곳은 그러므로 실재 속에서는 “삶이 다 유배당한” 곳이며, 기억만이 오롯하게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_홍정선(문학평론가
그의 시가 아름다운 서정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의 어느 언저리, ‘기억’이 있다. 그리고 꿈결처럼 흐르는 세상 속에 있던 시인이 이제 고개를 돌려 ‘유배당한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번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에는 모두 67편의 시가 들어있고 이 시들에서 시인은 가뭇없는 ‘기억’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현실의 묘사에 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