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현대 타이포그래피?
타이포그래피라는 말에는 언제나 현대적 속성, 즉 대량 생산, 표준화, 전문화, 분업화 등의 개념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현대 타이포그래피란 말은 동어 반복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모든 역사 서술은 “신화적이거나 허구적인 속성을 띨 수 있고, 따라서 선별된 사례들이 마치 일정한 서술법에 따라 역사 발전 단계를 구성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는 의심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서를 집필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현대 타이포그래피가 언제 시작하는지는 밝혀야 하는바, 저자는 이전까지 인쇄 및 타이포그래피 역사를 다룬 책들과 달리 “1450년이나 1800년, 1900년 또는 1914년이 아니라 1700년 무렵”을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시작으로 삼는다. ‘현대성’의 성립을 단순히 기술의 발명이나 사건이 아닌, 하나의 태도나 의식 표명으로 판단한다면 그때서야 인쇄술이 타이포그래피로 변한다는 뜻에서다.
비판―타이포그래피 역사
타이포그래피 실천을 이론화하고 여기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700년대부터 탁상출판이 본격화한 1990년대까지 주요 지역과 운동, 실천가를 두루 살피는 저자가 가장 먼저 비판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기존 타이포그래피사 모델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가시적 인쇄물과 디자인(디자이너에 초점을 맞추고, 활자체 양식에 필요 이상으로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주로 미학적 측면에 따라 서술이 이뤄지는 모델을 말한다. 이 책은 타이포그래피를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과 연결함으로써 이러한 관성을 깨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그 한계― 타이포그래피 수용자, 즉 독자에 대한 연구의 부재―또한 명확히 하고, 현실적 조건 내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주요 비판 대상은 타이포그래피 역사 곳곳에 존재하는 단순화한 이분법이다. 소위 전통 타이포그래를 중심에 두고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를 고립된 존재로 다루는 시각에서 벗어나, 전통 타이포그래피에 내재한 현대주의를 드려내고,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에도 엄연히 전통이 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