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문명에서 발원하여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정벌로 형성된 동서양 문명복합체였다. 그런가하면 고대 이스라엘 종교적 전통에서 발원한 유대교는 이 시기 팔레스타인에서 헬레니즘에 대하여 저항과 동화의 과정을 통하여 ‘헬레니즘적 유대교’라는 형태로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이것이 고대 기독교의 산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이후 서구의 종교학과 성서신학의 드넓은 토양을 제공했던 종교사학파의 명제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이다. 요컨대, 기독교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혼합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모태는 ‘헬레니즘적 유대교’요, 이 시기 유대교의 종파적 개혁운동의 결과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그 후계자들인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원과 국내의 하시딤의 지원을 받아 마카베오 항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기원전 143∼63년까지 팔레스타인에서 이른바 ‘유대성전국가’라는 독립된 왕국을 형성할 수 있었다. ‘세계화’된 헬레니즘에 의해 지중해 연안이 하나의 경제권과 문화권으로 통합되면서 당시 팔레스타인은 헬레니즘 제국들이 추진하는 ‘국가자본주의’에 깊이 편입되고 있었다. 군사와 경제가 혼합된 통치체제는 일상화된 착취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거대한 국부(國富의 유출사슬은 예루살렘 중심의 귀족 정치가들에게서 시작되어 가장 말단에 있는 세금관리들에 의해 완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