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시작하면서
제1부 불안한 정세
1. 애국자 신문과 왕당파 신문
2. 불안한 국내 정세
3. 불안한 국제 정세
4. 아비뇽 합병 문제
5. 마르세유의 사태
6. 몽토방 사태
7. 님 사태
8. 의원들의 결투?
제2부 낭시 군사반란
1. ‘왕의 군대’
2. 혁명이 군대에 끼친 영향
3. 낭시 사태의 발단
4. 말세뉴 장군의 등장으로 더욱 악화된 낭시 사태
5. 낭시 사태의 변수가 된 국민방위군
6. 낭시의 참화를 일으킨 주요 원인
- 부이예 장군의 명령과 오해
- 낭시 주둔군과 뤼네빌 총기병의 갈등
- 낭시 주둔군과 뤼네빌 시당국의 협상
- 말세뉴 장군의 도주
- 뤼네빌 총기병들의 말세뉴 장군 체포
- 8월 30일 낭시의 하루
7. 부이예 장군의 진압군 출동과 낭시의 갈등
- 부이예 장군에게 보낸 시도 대표단의 활동
8. 8월 31일 반란군의 적대행위
9. 더욱 악화된 상황과 진압
10. 일상으로 돌아가기
11. 국회의 마무리
12. 파리 국민방위군의 추모제
13. 합동위원회의 낭시 사태 분석
- 합동위원회의 평가
14. 낭시 문제에 관한 법 제정
연표
출판사 서평
군대에까지 밀어닥친 혁명과 반혁명의 갈등
“민주적인 군대는 있어도 군대 안에 민주주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군대라는 곳은 철저히 명령과 복종을 근간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공간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런데 혁명 원년인 1789년보다 혁명이 좀더 뿌리를 깊게 내린 1790년에 혁명의 열기가 급기야 ‘왕의 군대’에까지 밀어닥쳤다.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4권은 낭시에서 일어난 군사반란을 집중적으로 다룬다(1791년의 상황을 자세히 다룰 제5~6권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제3권에서 살펴본 ‘전...
군대에까지 밀어닥친 혁명과 반혁명의 갈등
“민주적인 군대는 있어도 군대 안에 민주주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군대라는 곳은 철저히 명령과 복종을 근간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공간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런데 혁명 원년인 1789년보다 혁명이 좀더 뿌리를 깊게 내린 1790년에 혁명의 열기가 급기야 ‘왕의 군대’에까지 밀어닥쳤다.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4권은 낭시에서 일어난 군사반란을 집중적으로 다룬다(1791년의 상황을 자세히 다룰 제5~6권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제3권에서 살펴본 ‘전국연맹제’는 시작부터 잔치가 분명했다. 더욱이 프랑스 왕국이 생긴 뒤 그런 종류의 잔치는 처음이었으며 분명히 국민화합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790년은 화합보다는 극복해야 할 불화가 훨씬 더 많은 해였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낭시에서 일어난 군사반란이었다. 여전히 파리와 지방에서는 빵값과 생활필수품 공급문제 때문에 민중이 봉기하여 크고 작은 소요사태를 일으켰고, 가톨릭교도들과 개신교도들의 갈등은 결국 피를 불러왔으며, 국경지대에서는 외국 군대가 침략할까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게다가 왕당파는 국내외에서 계속 일을 꾸며 혁명의 성과를 지우려 하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국회 안에는 의원들이나 방청객이 종종 무기를 소지한 채 드나들고 있었고 급기야 의원들끼리 결투를 벌이는 상황이 연출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