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식인들의 위기감이 응축되다
마테오 리치(1552~1610, 利瑪竇가 중국에 들어와 선교를 시작한 지 약 반세기 뒤 반기독교 문서들을 모은 ??성조파사집聖朝破邪集??과 ??벽사집闢邪集??이 발간되었다.
『성조파사집』의 정식 명칭은 『황명성조파사집皇明聖朝破邪集』으로, 일반적으로 『성조파사집』, 혹은 더 간략히 『파사집』으로 불린다. 이 책을 처음 편찬하기 시작한 사람은 황정黃貞이었다. 당시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1582~1649가 복건성 일대에서 상당히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유자儒者였던 황정은 알레니와 직접 담론을 나눈 뒤 숭정 8년(1635에 『차마 아니 할 수 없는 말(不忍不言』을 지어 천주교 사설로 인해 대중화大中華가 오랑캐의 종교와 풍습에 개변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하였다. 이어 숭정 10년(1637에는 복건성의 문인들이 천주교를 비판한 문장을 모아 『파사집』을 엮어 절강성 천동사의 원오圓悟(1566~1642를 찾아가 의기투합하고, 그의 제자인 통용通容(1593~1661에게 건네주었다. 통용은 황정의 『파사집』을 받은 후 제자인 서창치徐昌治에게 부탁하여 복건성과 절강성의 ‘파사’의 문장들을 추가로 찬집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내용이 보다 풍부해진 『황명성조파사집』이 숭정 12년(1639에 판각되어 1640년에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성조파사집』은 모두 8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남경교안南京敎案 당시 남경 예부를 중심으로 해당 관청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들로부터 시작해, 지식인들이 집정자와 백성을 향해 쏟아 낸 호소의 글들, 명유名儒와 고승高僧들이 비분강개하며 펼친 천주교 교리 및 의식에 대한 반박의 글들, 더 나아가 서구의 과학기술과 천문학 지식에 관한 변박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명실상부한 명 말 반기독교 문헌의 집결체로 중국과 서양 간 문화 충돌 시기의 역사 현장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다. 특히 천주교의 유입으로 인해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