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처칠의 수난과 투쟁
『처칠, 끝없는 투쟁』은 보잘것없는 시골귀족이었던 처칠 가문을 고위귀족으로 끌어올린 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1650~1722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150년 동안 역사책에서 종적을 감추었던 처칠 가문을 다시 일으킨 또 한 명의 천재가 소개된다. 서른 살에 “혜성처럼” 정치무대에 등장해서 6년 만에 보수당을 다시 집권당으로 만들었으나 부총리에 취임한 지 넉 달 만에 스스로 모든 관직을 내던지고 파멸한 기이한 천재 로드 랜돌프 처칠(1849~1895. 바로 그가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다.
[랜돌프 처칠은] 절도 없고 불끈 화를 내며 내던지고, 예의 없다고 할 정도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게다가 스스로도 몹시 쉽사리 상처를 입는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돈키호테 방식의 기사였다. 그러니까 무모하고 정신 나간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경탄의 뜻을 담아 ‘정신 나간 놈’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더욱 진지한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늙은 빅토리아 여왕은 그가 짧은 명성의 절정에 있을 때 악의를 품고 진지하게 그를 ‘정신병자’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죽었다. 겨우 마흔다섯 살 때였다. _본문 13쪽
처칠은 일곱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12년 동안 영국식 “초강력 교육기계” 기숙학교에서 잔혹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배움을 완강히 거부했고, 그로써 아버지 랜돌프 처칠에게 “재능 없고 희망도 없는 실패자”라는 경멸을 받아야 했다. “삶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의 열쇠를 쥔 듯이 보이는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 어린 처칠의 “트라우마”였다. 처칠은 스무 살이 되도록 고등학교 졸업시험도 통과하지 못했고, 사관학교 입학시험을 두 번 떨어졌으며, 보병이 되기엔 “멍청”한 부잣집 자제들이 흔히 지원하는 기병이 되어야 했다.
어린 처칠은 해로 스쿨에서 영원한 낙제생이었다. 오직 영어만 우수했고, 나머지 모든 과목에 대해 ‘이성을 닫아’걸었다. 학교 스포츠에서도 반항적인 실패자였으니 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