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셈법
모든 것은 변한다. 풍화 작용 역시 변화의 한 측면이다. 자연은 이 변화의 와중에서 개체에는 소멸을, 전체에겐 영원한 흐름을 약속한다. 건축에서 말하는 풍화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이 건물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현상이다. 자연의 셈법으로 보면 이는 ‘마이너스의 힘’, 즉 뺄셈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뺄셈은 단지 ‘약탈적인’ 뺄셈에 그치는가. 풍화는 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 생각하기에 따라선 이를 우리의 의도대로 유도할 순 없는가. 과연 소멸로 향해서 가는 건축에 자연의 ‘덧셈’으로 힘을 보태주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건축의 운명과 꿈
물질로 이루어진 건축은 정신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재료의 힘으로 버틴다. 그리고 풍화 현상은 이 재료에 가해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재료의 특성과 풍화 작용은 맞물려 있다. 대부분 유기적인 재료로 지어진 전통 건축물에 비해, 모더니즘 건축은 무기질 재료를 많이 사용한다. 유기질 재료가 풍화에 몸을 맡기고 언젠가 대지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면, 무기질 재료는 풍화에 몸을 사린 채, 영원한 젊음을 꿈꾼다. 재료의 문제는 또 건물의 구조와 건설방식, 공간의 질과 건축 미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제기된다. 건축이 풍화라는 자연 현상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미학’ 또는 ‘윤리학’의 차원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걸맞은 사례를 찾기 위해 이 책의 저자들은 서양의 고전에서 모더니즘 건축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피며 건축의 운명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한다.
건축과 풍화
건축은 자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도 건축은 그 규모와 역할이 가장 크고 포괄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건축이 자연의 부정적인 힘을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존재, 즉 풍화의 효과를 제대로 체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건축은 인간이 만든 것 대부분을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