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서 론
1부 몽골의 흥기와 양국관계의 형성
1장 몽골-고려 형제맹약 재검토
1. 머리말
2. 13세기 초 양국 외교관계의 성격
3. 형제맹약의 실체
4. 형제맹약에 관한 기억의 변용
5. 맺음말
2장 몽골의 遼東경략과 高麗-東眞 관계
1. 머리말
2. 동진의 흥기와 금-고려 연계 교섭
3. 몽골-동진-고려 화친 수립
4. 고려-동진 斷交와 著古與 피살 사건
5. 몽골의 동방진출과 고려-동진 동맹 시도
6. 맺음말
2부 쿠빌라이 시기 양국관계의 정립
1장 즉위 초 쿠빌라이의 고려정책
1. 머리말
2. 쿠빌라이 즉위 전 몽골의 고려정책
3. 쿠빌라이의 회유책 시행 배경
4. 책봉?조공 형식 채용의 의미
5. 맺음말
2장 1278년 쿠빌라이-충렬왕 만남의 의미
1. 머리말
2. 충렬왕의 외교적 ‘성과’와 위상 변화
3. 만남 후 고려의 ‘책무’와 六事
4. 호구조사, 징세 면제의 의미
5. 맺음말
3부 몽골의 세계관과 고려의 대몽외교
1장 몽골의 ‘복속’ 인식과 양국관계
1. 머리말
2. 몽골의 전통적 세계관과 ‘복속’ 인식
3. ‘복속’ 인식의 괴리와 蒙麗전쟁
4. 쿠빌라이 시기 ‘복속’ 인식의 동요와 정착
5. 고려의 率先歸附 기억 생산과 활용
6. 맺음말
2장 몽골의 일본인식과 양국관계
1. 머리말
2. 몽골의 전통적 세계관과 일본인식
3. 고려의 지정학적 조건과 역할
4. 고려의 일본인식 공유와 대몽외교
5. 맺음말
4부 征東行省을 통해 본 양국관계의 성격
1장 정동행성의 置廢경위와 성격변화
1. 머리말
2. 至元24년(1287 이전 置廢경위
3. 至元24년(1287 이후 성격변화
4. <元史> 「百官志」 관련기사 검토
5. 맺음말
2장 정동행성 기능의 변천:시기구분을 겸하여
1. 머리말
2. 몽골의 정벌활동과 정동행성의 군사기능
3. 정동행성의 특수성 보전
4. 奇氏一家의 득세와 정동행성 기능?권한 강화
5.
13~14세기 몽골과 고려, 양국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하게 밀착하고 몽골의 정치적 영향력이 고려에 직접 행사되었다는 점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화적으로 교류를 행했던 한중관계의 보편적 형태와 분명하게 구별된다. 우선 양국이 유례없이 30여 년에 걸친 장기간 전쟁을 겪었을 뿐 아니라, 화친 수립 후에도 한 세기 가까이 고려가 몽골에 철저하게 복속하여 그들의 각종 지시사항을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또한 양국 왕실이 대대로 통혼관계를 맺어 고려국왕이 몽골황실의 부마(駙馬가 되었고, 고려의 왕위계승자는 즉위 전 예외 없이 몽골에 질자(質子로 파견되어 일정기간 카안의 케식[怯薛]에 복무했으며, 고려에 몽골의 지방행정 기관인 행성(行省이 설치되고 고려국왕이 그 수장에 임명되었다. 아울러 고려가 수차례 몽골의 대내외 군사정벌 활동에 동원되었고, 공녀·환관·매를 포함한 각종 사람과 공물이 빈번하게 몽골에 진상되었다. 그런 점에서 양국 관계는 조공국의 정치적 독자성이 보장되었던 일반적 한중관계와 달리 고려가 몽골에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강고하게 복속되었던 특별한 시기로 규정될 수 있다.
이 같은 양국 관계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이에 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양국 관계 연구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몽원사에 관한 이해가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양국 관계는 대체로 종주국으로 군림하던 몽골이 주도했던 만큼 이를 제대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몽원사(蒙元史에 관한 심도 있고 체계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로 국내 고려사 전공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해당 연구는 몽원사에 관한 이해가 다소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이 발생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양국 관계를 몽골의 압제·간섭에 대한 고려의 저항·극복으로 보는 단선적인 시각의 문제점이다. 이는 양국 화친 후 몽골이 고려에 대한 압제·간섭을 강화하는 가운데 고려의 국왕·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