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까만 바탕 화면에 희미한 윤곽, 선들이 점등한다. 그것은 시선에 마지못해 보여 지다 이내 어둠으로 묻히기에 망막은 이내 조바심을 낸다. 이 희박한 장면은 검정과 흰색, 아니 그것들이 뒤섞여 자아내는 이름 지을 수 없는 중간 톤의 색채를 거느리며 침잠한다. 극도로 절제된 색채는 먹색을 중심으로 해서 몇 가지 제한된 색 안에서 금욕적으로 조율되고 반죽된다. 동양화 전공자로서 먹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시연하는 차원이기도 하고 동시에 마냥 캄캄한 배경에서 불현 듯 포착되는 기억, 장면, 무의식의 이미지를 출몰시키는 그림이기에 그런 색채가 요구되는 듯도 하다. 그러니 이 검은 배경은 우선 작가의 이미지가 배양되어 나오는 마음, 기억의 공간, 무의식의 지층, 이미지의 정원 등인 셈이다. 그림이란 애초에 명확한 것의 재현이라기보다 애매하고 잘 보이지 않고 결코 재현되기 어려운 것을 애써 포착하려 하는 일이자 막막한 ‘그것’을 포착하려는 절박한 시도이기에 저 검은 배경에서 기를 쓰고 나오는 그 무엇이다.
김명진의 그림에는 마석(자연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며 사는 일상의 장면이 들어있고 작은 정원에서 키우는 나무들과 보낸 시간, 함께 사는 사람과의 내밀한 심리적 관계,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비극, 유년의 추억과 순간순간 출몰하는 다양한 생각들, 무의식의 지층에 깔려 있는 것들의 출현 등 역시 혼거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풍경으로 바라보고 있고 그것은 자신의 정원 안에서 자란난다. 이 ‘눈먼 정원’은 중의적 의미를 거느린다. 하나는 볼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무의식과 기억 등의 탐사와 발굴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의한 것인데 우리에게 타자는 결국 미지와 무지의 것이다. 영원히 알 수 없는 타자와의 관계가 삶이고 사랑이라면 그것은 ‘눈먼 정원’에서의 삶일 것이다. 작가는 ‘그것들’을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와 수묵작업으로, 그러나 조금은 색다른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 박영택 /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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