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 길을 잃은 아들들의 시대: 한국 남성성의 각본 다시 쓰기 7
1장
기로에 선 아들들: 불안과 공허의 식민지를 살아가는 법 21
2장
반공전에 나선 용사들: 남한 우익의 계보 45
3장
형제들의 공동체: 남성동성사회와 좌우익 청년단체 71
4장
가족 재건 프로젝트: 한국전쟁이 만든 전선의 젠더 97
5장
무대 위의 남성성: 남장여자가 만든 세계 131
6장
전후 문학의 ‘퀴어’한 육체들: 해체되는 남성성 신화 165
7장
냉전체제 속 여성혐오: 너무 많이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193
8장
성별이분법의 틈새들: 병역법과 젠더의 위계 235
9장
‘남자 없는 사회’의 남성들: 모험을 허락하지 않는 모험 서사 257
10장
슈미즈를 입은 남자: 여장남자 코미디 영화의 정치적 불/가능성 291
11장
상경과 귀향의 젠더정치학: 남성의 얼굴을 한 민중 325
발표 지면 363
연표 364
아버지를 처단하지 못한 아들들의 선택: 나르시시즘으로서의 퀴어
근대문학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가족 로망스에서 출발한다. ‘로빈슨 크루소’가 보여준 것도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기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들의 서사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존 질서로부터 해방되어 개인으로 바로 서는 것, 이것이 곧 근대성의 신화이자 근대문학의 기원이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던 원시시대가 아들들의 조직적 아버지 살해를 통해 해체되는 데 주목한다. 시원적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은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탄생시킨다. 아버지가 독점하던 정치력을 아들들이 동등하게 분배하는 이 과정이 바로 ‘형제 동맹’이다.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은 아들들은 서로 간의 평등한 관계를 위해 여성을 교환하고, 근친상간을 금기로 확립한다.
그러나 조선의 청년들은 아버지와 대결할 기회를 빼앗겼다. 제국 일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버지를 제거하기는커녕 아버지와 함께 거세된다. 국가와 민족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광수의 초기 소설인 「사랑인가」(1909와 「윤광호」(1918는 제국 일본이라는 더 강력한 가부장이 외부로부터 등장한 상황에서 전근대적 아버지(기존 체제를 해체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남성 청년의 갈등과 고통을 일종의 ‘퀴어함’으로 풀어낸다.
이 퀴어함은 사실상 나르시시즘에 가깝다. 여성을 교환함으로써 자원을 획득했던 남성동성사회의 질서가 중지되었을 때 가시화되는 것은 성애적 측면(동성애이다. 이광수 소설의 주인공 남성들은 주로 자신의 동급생 친구를 사랑한다. 말하자면 이 애정은 자신의 자아 이상을 사랑 대상으로 택하는 경향에 가깝다. 이들은 상대를 자신의 전부로 여기고, 자신의 목숨이 상대에게 달려 있다고 믿으면서도, 정작 현실을 대면하려 하지는 않는다. 상대에게 직접 고백하는 대신 편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표출하는 식이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하는 순간, 이들은 자살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