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1 근대 국민국가 형성과 국가 시각 상징물
2 태극기의 보급과 확산
3 돈에 새겨진 국가 상징과 오얏꽃 문양의 탄생
4 국가 상징을 실어 세계로 보낸 우표
5 대한제국의 선포와 황제 즉위의 시각 효과
6 왕에서 황제, 대원수로: 군주의 복식과 이미지의 변화
7 서구식 군복과 문관복에 채택한 국가 상징
8 국가 상징체계와 훈장제도
9 망국과 국가 표상의 의미 변화
10 애국의 아이콘에서 상표까지: 일제강점기 국가 상징 시각물의 의미 변화
글을 마치며
참고 문헌
도판 목록과 출처
인명 색인
한국의 국가 상징 이미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국가 상징 이미지’란 말 그대로 국가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말한다. 우리에게는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가 그 대표적인 이미지로, 지금의 우리에게는 새삼스레 그 의미를 물을 만한 가치가 없을 만큼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19세기 말 근대의 초입에서 창안된 근대적인 이미지들로, 모두 각각의 특수한 맥락에서 만들어져야만 했던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국가를 상징하는 이 같은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군주의 통치권을 나타냈던 용(龍과 봉황이 있었을 뿐이고, 그조차도 모두 중화 문화의 상징체계에서 비롯된 전근대적 이미지였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한국의 국가 상징 이미지의 탄생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것들의 의미와 그 변천 과정을 꼼꼼하게 밝혀내고 있다.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 이미지는 조선이 근대국가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하기 위한 치열한 상징 투쟁의 산물이었다. 이를테면 태극기의 경우 현재까지도 여러 ‘창안설’이 존재할 만큼 만만치 않은 제정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열강이 간섭할 만큼 긴박한 정치적 역학 관계 또한 작동했다.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 이미지는 조선/대한제국이 근대적인 여러 제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필수적인 장치로 활용되어, 근대적인 일상과 시각문화의 풍경을 일신했다. 나아가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시기에는 단순한 국가 상징 이미지를 넘어 또 다른 의미들을 획득하기도 했다.
시각적 기호체계에 기반한 교류와
근대적인 제도의 시각적 장치
돌이켜보면 조선은 19세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주로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한자 문화권에 기반해 교류해왔다. 그런데 19세기 말 개항을 계기로 조선/대한제국은 중국과 일본 이외의 다른 많은 나라와 교류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그동안 “한자를 매개로 공유했던 문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8쪽 근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