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다의 눈에만 보이는 세상
닷다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본다. 오래된 나무 도마에 깃든 백발 할머니라든지,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하이에나 떼라든지……. 학생이 된 닷다는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척하는 데 도가 텄다. 무언가 보인다고 말하면 엄마가 슬퍼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닷다는 교복까지 차려입고 교실에 떡하니 앉아 있는 너구리를 보게 된다. 보송보송 털 달린 꼬리하며 눈 주변 거무튀튀한 무늬하며…. 분명 너구리가 틀림없었다. 너구리가, 교복까지 입고, 남의 교실에, 왜? 의문이 들었지만 닷다는 역시 너구리를 못 본 척하기로 한다. 어차피 다른 애들 눈에는 안 보일 테니까. 나만 못 본 척하면 만사오케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교내 여자화장실에서 몰카 사건이 발생하고 몇몇 학생들이 몸싸움을 벌인다. 뒤늦게 사건 장소에 간 닷다는 사건의 일부만 보게 되고, 한쪽 구석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너구리에게 사건의 전말에 대해 듣는다. 이후 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지고, 가해자가 된 피해자 양다솔이 닷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닷다는 ‘못 본’ 걸 봤다고 할 필요는 없으므로, 외면한다.
피해자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뒤 교실 한 구석에 또 다른 녀석이 들어왔다(물론 닷다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녀석은 아주 시커멓고 흉측하게 생겼는데,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몰라도 아주 징그럽고 빠르게 커진다. 교실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그 녀석은 점점 커져서 교실을 넘어 복도까지 비어져 나간다. 몰카 사건 이후,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모두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닷다는 실체 없는 괴물이 교실 전체를 압사시키기 전에 결심한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걸 말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지만, 이번만큼은 말해야 한다고 말이다.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양다솔, 나는 내가 본 것을 너에게 얘기하고 싶어. 너에게는. 그리고 어쩌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언젠가는. _34쪽 「닷다의 목